말도 안 돼…음식·향수 다 들어가는 디저트계 1티어 '식재료', 멸종 위기 경고
2025-07-1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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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극복하지 못할 경우 멸종할 가능성 높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디저트계의 강자이자 커피, 향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식재료가 기후 위기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벨기에 루벤대학교와 코스타리카 랑케스터식물원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최근 'Frontiers in Plant Science'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서 "기후변화가 야생 바닐라와 이를 수분하는 곤충 서식지를 갈라놓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기후 변화에 따라 바닐라와 이를 수분하는 곤충들이 미래에 어디에서 살 수 있을지를 예측했다. 연구진은 환경 조건이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 안에서 중남미 지역 야생 바닐라 11종과 수분 활동이 관찰된 곤충 7종의 2050년까지 서식지 변화를 추적했다.
우선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래에 완만한 기후 변화 대응과 적응이 이뤄진다는 전제를, 두 번째 시나리오는 화석연료 의존이 높고 국제적 협력 부재로 기후 위기가 악화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연구진의 시뮬레이션 결과, 야생 바닐라 7종은 두 시나리오에서 서식지 최대 140%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종은 최대 53%까지 서식지가 축소될 것으로 나왔다.
반면 수분 곤충 7종 전체는 서식지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서식지 감소 폭이 컸다. 문제는 수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바닐라 열매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샬럿 와틴 박사는 "바닐라는 수분이 없이 자연 상태에서 열매를 맺기 어렵다"라며 "기후 변화로 바닐라와 수분자 서식지가 달라지면 야생 바닐라 개체군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닐라 종은 특정 곤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수분자가 사라진다면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바닐라는 이미 우리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 음료, 유제품, 베이킹 재료 같은 식품 산업부터 향수나 샴푸, 보디워시, 립밤, 핸드크림 등 화장품 산업에도 폭넓게 쓰이고 있다. 또 아로마테라피나 약용 시럽, 영양제 같은 건강 산업에서도 쓰인다. 과학 산업에서도 바닐라는 연구 대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닐라의 생산은 극도로 제한된 지역, 특히 마다가스카르, 인도네시아, 우간다 등지에서만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노동집약적인 수분 과정과 기후 조건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생산 불안정성이 매우 크다.
이런 바닐라가 멸종하면 식품 업계는 대체 향료나 인공 바닐린으로 급격하게 전환하게 된다. 이는 제품의 맛과 향에 직격탄을 줄 뿐 아니라 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천연 성분을 강조해 온 프리미엄 브랜드는 정체성을 잃을 우려가 크다. 바닐라를 주요 원료로 삼아온 제과, 유제품, 음료 회사는 생산 라인을 전면 수정해야 하고 이는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한 식품업계 종사자들은 새로운 레시피와 맛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재교육과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향수와 화장품 산업도 큰 타격을 입는다. 바닐라는 따뜻하고 감미로운 향의 베이스 노트로 사랑받아 왔으며 수많은 향수 제품과 보디 제품에 쓰여왔다. 바닐라의 멸종은 곧 제품의 대대적인 재편을 의미하며 이는 브랜드 충성도 저하로 직결된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향을 잃게 되고 새로운 향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장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천연 원료에 의존해 온 니치 향수 브랜드는 더욱 큰 타격을 입는다.

바닐라 농업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온 현지 농민들의 삶도 무너진다. 마다가스카르와 같은 주요 생산국에서는 바닐라가 주요 수출 품목이자 생계 자원이었다. 바닐라 멸종은 이들 지역의 경제 기반을 붕괴시키고 이는 빈곤율 증가와 이주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바닐라 재배가 이루어진 지역의 생태계도 영향을 받게 된다. 바닐라를 수분시켜 온 특정 꿀벌이나 곤충도 생존 기반을 잃게 되며 이는 또 다른 연쇄 생태계 붕괴로 연결된다.
과학계와 생물공학계에서도 혼란이 일어난다. 바닐라에서 추출한 바닐린은 실험용 지시약, 미생물 배양 등 연구에 널리 사용됐다. 이러한 자원이 사라지면 연구 비용 증가와 실험 설계의 변경이 불가피해진다. 천연 바닐라를 활용한 신약 연구, 기능성 식품 개발 등 다양한 연구 과제도 중단되거나 방향 전환을 요구받게 된다.

생활 속에서도 바닐라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피부로 체감된다. 차량용 방향제, 세탁 세제, 디퓨저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제품의 향이 바뀌며 소비자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바닐라 향이 사라짐으로써 일상에서의 작은 위로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처럼 바닐라의 멸종은 단순한 향신료 하나의 소멸이 아니라, 산업, 경제, 생태, 일상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