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 속출... 중대본 3단계 발령
2025-07-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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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산사태, 정전, 범람... 도로·철도·항공기 운행 차질
이틀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또한 1000명이 넘는 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옹벽 붕괴와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4분쯤 오산시 가장교차로 수원 방면 고가도로의 10m 높이 옹벽이 무너져 고가도로 아래 도로를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쳤다. 이 사고로 차량 운전자인 40대 남성 A 씨가 사고 3시간 만인 오후 10시쯤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지만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 숨졌다.
피해 차량은 무게 180t, 길이 40m, 높이 10m가량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눌려 있었으며, 굴착기 등을 동원한 작업 끝에 수습됐다. 사고 이후 가장교차로 도로는 차량 통행이 모두 제한된 상태다. 사고 직전인 오후 5시 44분부터 6시 44분까지 오산시의 시우량은 41mm를 기록했다.
충남 서산과 당진에서도 침수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3시 59분쯤 서산시 석남동 한 도로에서 차량이 물에 잠겼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은 오전 6시 15분쯤 정차돼 있던 침수 차량에서 심정지 상태의 60대 남성 B 씨를 발견해 서산의료원으로 긴급 이송했으나 끝내 숨졌다.
수색을 이어간 소방당국은 오전 11시 25분쯤 B 씨를 발견한 지점 인근에서 80대 남성 C 씨가 물에 빠져 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C 씨 차량이 인근에 정차된 점을 토대로 그가 차량을 몰다가 밖으로 나와 폭우에 휩쓸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당진에서는 17일 오전 10시 40분쯤 당진시장 부근의 침수된 주택에서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던 중 지하실에서 80대 남성 D 씨 시신을 발견했다.
서산과 부여에서는 각각 1명씩 저체온증과 손이 찢어지는 경상으로 치료를 받았다.
전국 곳곳 산사태·옹벽붕괴·정전 피해
집중호우로 인한 2차 피해도 속출했다. 충남 청양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2명이 매몰됐다가 구조됐다. 이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주시 정안면에서도 배수로 정비 작업을 하던 주민 등 3명이 폭우에 쓸려 내려온 토사에 신체 일부가 매몰돼 중경상을 입었다.
충북 음성군에서는 17일 오전 5시 56분께 음성읍의 한 주택 뒤편 옹벽이 무너져 액화석유가스(LPG) 가스통이 파손됐다. 이로 인해 가스가 소량 누출돼 당국이 안전조치를 취했다.
앞서 이날 0시 52분께는 진천군의 한 공장에서 낙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에 정전 피해도 발생했다. 광주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50분쯤 광주공고에서 낙뢰로 인해 정전이 발생해 1시간 만에 복구됐다. 수업 재개가 어렵다고 판단한 학교 측은 학생들을 귀가시켰다. 강원 춘천 서면에서도 오전 4시 15분께 정전이 발생해 1시간여 만에 복구됐다.
1000명 넘는 주민 긴급 대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3개 시·도, 5개 시·군에서 313가구 주민 1070명이 일시 대피했다.
새벽 한때 시간당 최대 67.4mm의 폭우가 쏟아진 충북 청주에서는 10개 마을 주민 90여명이 대피했다. 하천 범람이 우려되는 오송읍 상봉2리·호계리·북이면 화상리 등 4개 마을 주민 80여명은 인근 마을회관이나 다목적체육관으로, 산사태 취약지역 6개 마을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청주시는 대피한 주민들에게 이불, 베개, 수건 등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 일대는 마을 일부가 물에 잠기면서 주민 40여명이 마을회관과 인근 초등학교로 긴급 대피했다.
경남 창녕군은 이날 오후 1시 27분께 도천면 송진 2구 마을에 호우가 우려된다며 주민 모두 송진 1구 마을회관으로 대피해달라고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송진 2구 50세대 70여명 다수가 대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시간당 50mm의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된 부곡면 수다마을 주민 20가구 30여명도 마을회관으로 사전 대피했다.
광주도 초비상 상황이다. 우선 광주천이 범람 위기 상태다. 광주 용산교는 오후 3시 20분 기준 수위가 3.35m로 치솟아 홍수경보를 앞두고 있다. 용산교는 수위 2.60m에서 홍수주의보가, 수위 3.60m에서 홍수경보가 내려진다. 아울러 시간당 최대 80㎜의 물폭탄이 쏟아지며 영산강권역 전체 관측지점에 '수위 상승'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교통 대란…도로·철도·항공 운행 차질
많은 비에 지반이 약해지면서 도로·철길이 끊기고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을 빚었다.
비탈면 토사가 흘러내린 대전당진고속도로 면천IC 부근 양방향이 한때 전면 통제돼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현재 대전방향 일부 통행이 재개됐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울 방향 해미IC∼서산IC 구간도 통행이 차단되는 등 빗물과 쓸려 내려온 토사에 일부 고속도로가 통제됐다.
철도 운행도 큰 차질을 빚었다. 코레일은 이날 오전 4시 30분부터 경부선 서울역에서 대전역 간 일반 열차의 운행을 일시 중지했다. KTX는 전 구간 운행 중이다. 장항선 천안역∼익산역, 서해선 홍성역∼서화성역 일반열차 운행도 멈춘 상태다. 1호선 전동열차는 평택역에서 신창역까지 구간이 일시 운행 중지됐다. 연천에서 평택역 간 열차는 정상 운행 중이다.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국내선 출발 7편과 도착 8편 등 15편이 결항하고, 국내선 도착 25편과 출발 22편 등 47편이 지연됐다. 결항 지역은 강원 원주와 광주, 부산·김해, 청주 등 전날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리는 곳이다.
목포-홍도를 잇는 배편 등 31개 항로 39척의 운항이 중단됐다. 북한산·지리산·속리산·월악산 등 국립공원 15곳 374개 구간과 둔치주차장 69곳도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 1만 956건 출동
소방청은 전날 오후 3시부터 17일 오전 9시까지 모두 1956건의 소방활동을 폈다. 1813건은 안전조치였다. 급·배수 지원은 141건, 인명구조는 2건(3명)이었다.
전날 0시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지역별 누적 강수량을 보면 서산 419.5mm, 홍성 411.4mm, 당진 376.5mm, 아산 349.5mm, 태안 348.5mm 등 충남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
중대본 3단계 발령…최고 수준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집중호우 대응을 위한 회의를 열고 풍수해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또 중대본 3단계를 가동해 부처와 유관기관의 비상대응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중대본 3단계가 발령되기는 2023년 이후 처음이다. 2022년과 2023년 태풍과 호우로 각각 1차례씩 중대본 3단계가 발령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대본 근무자가 증원되고, 가용경찰력과 장비 총력 지원, 부처별 재난상황실 확대 운영 등이 이뤄지게 된다. 중대본은 행안부 국·과장급으로 구성된 현장상황관리관을 전국에 급파해 집중호우 기간 중앙과 지방의 유기적인 협조를 공고히 하고, 실시간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기상 원인과 추가 강우 전망
간밤 충청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쏟아진 집중호우의 원인은 북서쪽에서 기압골이 다가오면서 그 전면에서 유입되는 고온다습한 공기와 뒤쪽에서 따라 내려오는 차고 건조한 공기가 충돌해 서해상에 중규모 저기압을 만든 것이다.
지난 13∼15일 한국 북쪽 대기 상층에 자리한 절리저기압에 유도돼 우리나라 상공을 차지했던 차고 건조한 공기가 동쪽으로 약간 물러나 마치 고기압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비구름대를 압축, 매우 강한 강도의 비를 불렀다.
이날 오후까지는 호우가 잠시 쉬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저녁부터는 저기압 뒤쪽으로 지속해서 남하해 들어오는 건조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으로 세력 확장함에 따라 유입되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충돌하면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재차 쏟아지겠다. 이러한 상황은 18일 오전까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날 밤 성질이 다른 두 공기 경계로 부는 하층제트를 바로 맞는 충청에 다시금 많고 강한 비가 쏟아지겠다. 하층제트는 고도 약 1.5km 지점에서 부는 빠른 바람으로 다량의 수증기를 공급해 강수량을 늘린다.
이후 비는 18일 낮 다소 잦아들었다가 저녁부터 19일 오전까지 다시 거세게 쏟아지겠다. 이때는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되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지형과 충돌하는 남부지방에 호우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더 내릴 비의 양은 충청 50∼100mm(충남권 최대 150mm 이상, 충북 최대 120mm 이상), 수도권·강원내륙·강원산지·전북 30∼100mm(경기남부·강원중남부내륙·전북서부 최대 150mm 이상),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제주산지 30∼80mm(부산·울산·경남·경북북부내륙 최대 100mm 이상), 광주·전남 20∼80mm(최대 100mm 이상)가 예상된다.
18∼19일에는 광주·전남·부산·울산·경남에 100∼200mm(전남남해안·지리산·부산·울산·경남 최대 300mm 이상), 충청에 50∼150mm(충남권 최대 180mm 이상), 전북과 제주에 50∼100mm(제주산지 최대 200mm 이상, 북부와 산지를 제외한 제주와 전북 최대 150mm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비가 시간당 50∼80mm씩 쏟아질 때도 있겠으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20일부터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덮어 다시 무더운 날씨가 나타나겠다. 이때 정체전선이 우리나라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면서 중부지방도 장마가 종료될 수 있다.
중대본은 집중호우 시 외출을 삼가고 저지대·하천변·산사태 위험지역 등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은 접근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