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처참하게 전멸…18년 전 악몽 되풀이 우려 나오고 있는 '이곳'
2025-07-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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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해군기지 공사로 훼손된 천연기념물 강정 앞바다
제주도가 서귀포항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인근 해역의 멸종위기종 군락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주도는 총 500억 원을 투입해 서귀포항에 여객 부두, 잡화 부두, 모래 선적 부두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계획된 공사 범위는 준설 면적 약 3만 6000㎡, 매립 면적 약 3만 3000㎡로 알려졌다. 이번 사업은 대형 여객선과 화물선의 입항이 가능하도록 항만 시설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재정비 사업이 추진되면서 인근 해양 생태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공사 예정지에서 불과 1km 떨어진 문섬 해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산호 군락지가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해양 생태계로, 다채로운 산호들이 모여 독특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흙과 모래 등의 부유 물질이 해류를 타고 퍼지면 이 군락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산호는 매우 민감한 생물로,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생존에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부유 물질은 연산호의 표면에 쌓이면서 광합성을 방해하고 장기적으로는 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산호는 외부의 깨끗한 물과의 순환을 통해 산소를 얻기 때문에 퇴적물이 쌓이면 물과 접촉면이 줄어들어 호흡이 어려워진다. 이는 조직이 괴사하거나 손상이 누적될 수 있는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부유 물질이 연산호에 가하는 물리적 자극도 문제다. 부유 물질이 계속 쌓이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진다. 이는 질병 감염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연산호는 산호충류의 무척추동물로, 촉수를 펼쳐 플랑크톤을 섭취하는데 조류가 없거나 침전물이 많을 경우 플랑크톤 공급에 방해를 받는다.
따라서 공사로 인한 부유사의 확산은 단순한 미관 훼손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재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는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오탁 방지막을 설치하고 잠수사가 저압 송풍기를 사용해 연산호에 부유 물질이 쌓이지 않도록 막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이 같은 대응 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신수연 센터장은 바다의 특성과 연산호 서식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대응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간에 걸친 생태계 변화나 군락지 회복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며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귀포항 재정비 사업이 연산호 군락지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큰 이유는 비슷한 과거 사례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18여 년 전 제주 해군기지 공사 때도 강정항 인근 범섬 해역의 연산호 군락지가 훼손된 바 있다. 당시 연산호 군락지의 멸종위기종 2급인 자색수지맨드라미가 공사 시기로부터 10년 뒤 전부 사라진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안겼다.
이런 내용은 2017년 공개된 '강정 앞바다, 연산호 훼손 실태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확정된 2007년부터 10년간 강정마을 앞바다 연산호 군락의 변화된 모습을 담은 보고서다.

당시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제주연산호조사대책반은 제주해군기지의 직접적·간접적 영향권인 강정등대, 서건도, 범섬, 기차바위 등 4개 지점 주변에 대한 계절별 조사를 실시해 직접 영향권인 강정등대와 서건도 주변의 연산호 군락이 많이 감소하고 훼손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정 앞바다는 2000년 이후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해양수산부 생태계보전지역, 제주도해양도립공원 등 7종류의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연산호는 환경부와 국가유산청, 멸종위기야생생물의 국제간 거래에 관한 협약에 따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국제 보호종이다.
당시 이들이 발표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강정등대 남쪽 50m, 수심 15m 지점을 2008년과 2015년 촬영한 결과, 둔한진총산호(멸종위기종 2급)는 색깔이 변해 죽어가고 있었고 자색수지맨드라미(멸종위기종 2급)는 전멸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서건도 남쪽 100m, 수심 15m 지점 수중동굴 주변의 분홍수지맨드라미 개체 수는 7년 사이 대부분 줄었고 크기도 훨씬 작아졌으며 함께 서식하던 감태는 사라졌다.
이후 해군은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일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연관성을 인정했다.

제주도는 다음 달 중으로 서귀포항 재정비 사업에 대한 공사를 발주한 뒤 올해 말쯤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미숙한 대처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한 만큼 이번에는 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 연산호 군락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도는 관광과 자연이 공존하는 섬으로서 생태계 보존에 대한 책임 또한 크다. 공공사업은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책임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둘러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키면서도 필요한 개발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