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의 살아있다” 성폭행범 혀 깨문 최말자 씨, 61년 만에 '무죄' 구형

2025-07-2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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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 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1964년 성폭행 시도에 맞서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오히려 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최말자(78) 씨가 61년 만에 법정에서 무죄 구형을 받았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78)가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받고 나서며 취재진을 향해 하트를 만들고 있다. / 뉴스1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78)가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받고 나서며 취재진을 향해 하트를 만들고 있다. / 뉴스1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1시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최 씨의 중상해 사건 재심 첫 공판 및 결심공판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날 법정은 최 씨와 변호인단, 언론진, 여성단체 관계자 등으로 만석을 이뤘다.

검찰은 증거 조사 후 피고인 심문을 생략하고 즉시 구형에 들어갔다. 검찰 측은 "본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정당한 방해 행위이고, 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위법하지도 않다"며 "피고인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검찰은 과거 수사기관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검찰은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라며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고 인정했다.

검찰은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 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도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됐던 것"이라며 "법원이 응답할 때"라고 촉구했다.

변호인은 "검찰과 법원이 과거 세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듯 변호인들도 선배 세대 변호인이 남긴 미완의 변론을 이제 완성하고자 한다"며 최 씨의 행위가 정당방위라고 거듭 주장했다.

최 씨는 최후 진술에서 61년간의 고통을 토로했다. 최 씨는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어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할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꼭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씨는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온 삶, 희망과 꿈이 있다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을 만들어 달라고 두손 모아 빌겠다"고 당부했다.

23일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 받고 두 손을 번쩍 든 최말자 씨 / 뉴스1
23일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 받고 두 손을 번쩍 든 최말자 씨 / 뉴스1

사건의 발단은 1964년 5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만 18세였던 최 씨는 노 모(당시 21세) 씨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하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시켰다.

그러나 당시 사법부는 최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상해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성폭행을 시도한 노 씨에게는 강간미수 대신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더 가벼운 형이 내려졌다.

최 씨는 사건 발생 56년 후인 2020년 5월 용기를 내어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 구금과 자백 강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3년여의 심리 끝에 최 씨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 신문 기사, 재소자 인명부, 형사 사건부, 집행원부 등에 대한 법원의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를 받아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최 씨의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를 인용하며 재심의 문을 열어줬다.

공판을 마친 최 씨는 법정 밖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환호했다. 최 씨는 "실감이 아직 나지 않지만, 분명히 귀로 들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 대한민국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을 9월 10일 오후 2시에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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