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외면했는데…한국인만 유독 미쳐있다는 '해산물'
2025-07-23 15:44
add remove print link
전 세계 소비량의 90%가 한국에서 이뤄져
투박한 껍질, 손질도 번거롭고 비주얼도 호감형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해산물에 미쳐 있다. 세계에서 잡히는 대부분의 물량이 한국으로 향하고, 정작 원산지 사람들은 무슨 맛인지도 모른다.

이 신기한 해산물, 바로 '골뱅이'다.
Stripes Korea 등 외신에 따르면 전 세계 골뱅이 생산량의 80~90%가 한국에서 소비된다. 영국 어부들은 자국민이 먹지도 않는 골뱅이를 오직 한국인들을 위해 잡는다. 심지어 어떤 어부는 골뱅이 맛도 모른 채 평생 잡아왔다고 말한다. 영국 사람들은 골뱅이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혐오 식재료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골뱅이 덕분에 억대 연봉을 버는 어부들이 영국 해안 곳곳에 있다.
한국은 왜 이렇게 골뱅이에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가격 때문은 아니다. 국내산 골뱅이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인기고, 그래서 수입산이 대거 들어온다. 그중에서도 쫄깃한 식감과 위생 기준이 높은 영국산이 최고로 친다.
■ 을지로 골뱅이 무침, 어떻게 시작됐나
지금은 마트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뱅이 통조림이지만, 본격적인 대중화의 출발은 1960년대 후반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수산물 교역이 시작되면서 골뱅이 통조림이 수출용으로 개발됐고,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간장에 조려 먹거나 초밥에 사용하는 용도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골뱅이 통조림이 한국 대중문화에 본격 등장한 건 서울 을지로에서였다. 인쇄소가 몰려 있던 을지로 3가 일대에서 디자이너와 편집자들이 퇴근 후 즐겨 찾은 술안주가 바로 골뱅이 무침이었다. 통조림 골뱅이에 파채, 북어채,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고 버무린 골뱅이 무침은 맥주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당시에도 골뱅이 통조림은 결코 싼 음식이 아니었다. 1970년대 생맥주 한 잔이 500원이었고, 라면 한 봉지가 80원이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뱅이 무침은 '일 끝내고 한 잔'의 상징적인 메뉴가 됐고, 지하철 2호선 개통 이후 을지로 일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국민 안주로 자리 잡았다.
■ 유동골뱅이의 성공, 그리고 세계화된 골뱅이 수급
골뱅이 수요가 폭증하면서 통조림 생산업체도 늘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골뱅이 자원이 부족해지기 시작한다. 유동골뱅이를 만든 유성물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산지를 적극적으로 찾았고, 이때 발견한 곳이 바로 영국이다. 영국 해역은 수온이 낮아 골뱅이 육질이 단단하고, 해양 생태계 관리가 엄격해 위생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정작 영국 현지에서는 골뱅이를 식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비주얼은 달팽이 같고, 점액질 특유의 질감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다. 유럽 내에서도 골뱅이를 먹는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며, 실제로 잡힌 골뱅이를 다시 바다에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유동은 이 점에 착안해 영국 어부들과 계약을 맺고 수출용 골뱅이를 대량 수입했다. 이후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추가 산지를 확보하며 골뱅이 수급을 안정화시켰다.
한때 외환위기나 팬데믹 등으로 한국 수요가 급감했을 때는 영국 현지 골뱅이 공장이 줄줄이 폐쇄되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은 세계 골뱅이 산업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국이다.
지금도 골뱅이 통조림을 고를 땐 '고형량' 표시를 확인해보는 소비자들이 많다. 같은 용량이라도 골뱅이의 크기, 양념 국물 함량에 따라 실제 내용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유동은 평균 고형량이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며, 표기량보다 실제로 10% 이상 더 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입맛과 식문화, 그리고 기업들의 유연한 대응이 만들어낸 골뱅이 열풍. 전 세계가 외면한 이 해산물은, 한국에서만큼은 여전히 국민 안주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