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값보다 못해”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 국가배상 결정에 반발
2025-07-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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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부실 의료, 생명을 외면하다
군 복무 중 급성 백혈병에 걸렸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진 고 홍정기 일병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일부 배상을 인정하긴 했지만, 유족들의 분노가 재판 직후 법정을 뒤덮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3부(재판장 윤재남)는 홍 일병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800만 원, 형과 조부모에게는 각각 100만 원씩 총 19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말 개정된 국가배상법이 적용된 첫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개정 전에는 전사나 순직한 군인에 대해 국가가 이미 지급한 보상 외에 위자료 청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홍 일병 사건을 계기로 법이 바뀌면서, 군 복무 중 사망한 이들에 대해 정신적 손해에 대한 별도의 배상이 가능해졌다.
1심에서는 개정 전 법령을 근거로 유족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일정 부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판결 직후 유족들과 군인권센터 측은 배상액 규모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사람 목숨 값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고, 일부는 선고가 끝난 법정으로 다시 들어가 재판부에 직접 항의했다. "개값보다 못하다", "차라리 군대에 보내지 말라고 해라" 등의 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끝내 선고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퇴정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홍 일병 사건은 국가배상법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례”라며 “국가의 책임이 명확히 드러난 사건임에도 유족들에게 책임의 일부를 지우고, 턱없이 낮은 위자료를 제시한 건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송 비용의 40%를 유족에게 부담하게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한 공식 입장을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계획이다.
고 홍정기 일병은 2015년 8월 입대했고 다음 해 3월부터 구토와 두통, 멍 등의 증세를 호소했다. 군 의료진은 혈소판 수치의 이상을 인지했지만, 위급 상황이 아니라며 병사에게 귀가 조치를 내렸다.
같은 날 민간병원에서는 백혈병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며 정밀검사를 권했지만, 군은 이를 근거로 상급병원 전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홍 일병은 3월 24일 사망했다.
이 사건은 2020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재조명됐고, 위원회는 군의관의 판단 미숙과 지휘 체계의 부실 대응이 병사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