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여름철 대표 보양식인데 이제 마음껏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생선' 정체
2025-07-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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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등재되면 양식업체 심각한 타격 입을 것으로 전망돼
해수부 제2차 실뱀장어 자원관리 협의회 열어 대응 방안 세울 예정
한국에서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꼽히는 뱀장어를 앞으로는 쉽게 접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이 뱀장어를 국제 거래 규제 대상인 멸종위기종으로 등재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뱀장어를 무더운 여름철 원기 회복에 좋은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여겨왔다. 뱀장어는 단백질과 비타민 A, E,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피로 회복과 면역력 강화에 탁월한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도 임금에게 진상된 바 있는 뱀장어는 오랜 세월 동안 건강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여름 보양 음식 중 단골 메뉴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24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지난달 27일 모든 뱀장어 종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즉 CITES 부속서 II에 등재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열리는 CITES 제20차 당사국 총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등재가 확정될 경우 뱀장어 국제 거래에 여러 규제가 생기게 되며 국내 양식업계는 실뱀장어 수입 차질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뱀장어 양식 산업은 내수면 어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뱀장어 양식 생산액은 5140억 원으로, 이는 전체 내수면 어업의 약 74%를 차지하는 수치다.
국내 뱀장어 양식업계는 뱀장어 치어인 실뱀장어를 자연에서 포획해 키우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 대만 등지에서도 수입해 들여오고 있다. 문제는 이 수입 의존도가 약 80%(2023년 기준)에 달한다는 점이다.
만약 뱀장어가 멸종위기종으로 확정 등재된다면 수입 과정이 훨씬 까다로워질 뿐 아니라 수입 비용과 통관 시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양식업체들은 공급 차질과 운영비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우려 속에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5일 '실뱀장어 민관협의체'를 발족하고 뱀장어 자원관리, 국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해수부는 이날 제2차 실뱀장어 자원관리 협의회를 열어 CITES 대응을 위한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주요 이해 관계자들과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 4개국이 함께 참여하는 '뱀장어 자원 보존을 위한 동북아국가 협의회' 결과도 함께 공유하면서 각국이 협력해 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논의할 계획이다. 앞서 열린 '제18차 동북아국가 협의회'에서는 뱀장어의 멸종위기종 등재에 반대하는 과학적 근거와 각국의 자원관리 방안을 종합한 공동 성명서 작성이 추진되고 있다.
해수부는 이와 더불어 외교부와 협력해 CITES 등재 반대 입장을 지지해 줄 우호국 확대에도 나설 방침이다. 규제의 국제적 성격을 고려할 때 단순히 국내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다자 협력과 외교적 연대가 병행돼야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기 대응에만 그치지 않고 등재 전후 등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최순 어업양식산업 연구실장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두 가지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는 CITES 등재 자체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제사회에 국내의 노력과 뱀장어 자원관리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려 공감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설령 등재가 결정되더라도 CITES 협약 제23조에 명시된 '유보 조항'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조항은 특정 국가가 협약 적용을 일정 기간 유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우리나라도 과거 돌묵상어, 고래상어, 해마 등에 대해 유보를 선언한 사례가 있다. 이에 실뱀장어도 이 유보 조항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유보를 선언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교역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국인 한국과 실뱀장어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동시에 유보를 선언해야만 교역 제한 없이 수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양국 간 외교적 조율이 필수다.
최순 연구실장은 "만약 CITES 규제가 본격화할 경우, 일부 양식 어가는 심각한 경영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업종 전환을 유도하는 등 정책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라며 "또 실뱀장어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인공 종자 생산을 포함한 완전 양식 기술의 조기 상용화가 필수적이므로 정부의 연구 개발 투자와 기술 보급 확대가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여름이면 꼭 한 번씩 찾게 되는 뱀장어 요리, 하지만 국제적 멸종위기종 지정 논의가 현실화할 경우 이제는 그 귀한 맛을 더 이상 쉽게 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식탁 위의 뱀장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부터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