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에밀 졸라 30년 우정 담은 서간집 예상 뛰어넘는 호응
2025-07-2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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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 입증

폴 세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서 최근 출간된 '교차된 편지들 1858-1887'(소요서가 발행)이 출판계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소요서가 측은 구체적인 판매량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636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3만 2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 그리고 인문서적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할 때 고무적인 성적으로 평가된다.
책은 인상파 화가 폴 세잔과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가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들을 완역한 것이다.
단순한 서신집을 넘어 19세기 프랑스 예술사의 생생한 증언이자 두 거장의 정신적 자화상을 담은 책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깊이 있는 예술서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평생을 졸라 연구에 헌신한 권위자 앙리 미테랑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가 책의 편집과 해설을 맡았다. 2016년 프랑스 갈리마르 판을 저본으로 해 현존하는 편지를 연대순으로 총망라해 완역한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19세기 프랑스 예술계를 대표하는 거장들인 세잔과 졸라는 엑상프로방스의 같은 중학교 출신 동창이자 평생 우정을 나눈 사이다.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 미술의 기초를 닦은 화가로 평가받는다.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가다.
두 사람의 우정은 1858년 졸라가 파리로 이주하면서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됐지만, 이후 30년간 115통의 편지를 통해 지속됐다. 편지들에는 청춘 시절의 고민과 꿈, 예술에 대한 열정, 서로에 대한 격려와 지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2013년 새롭게 발견된 세잔의 마지막 편지가 수록됐다는 점이다. 1887년 11월 28일 자로 된 이 편지는 그동안 학계에서 정설로 여겨졌던 두 사람의 절교설을 뒤집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받고 있다. 1886년 졸라의 소설 '작품' 속 자살한 비운의 천재 화가 캐릭터가 세잔을 모델로 했다고 여긴 세잔이 분노해 절교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이 편지는 작품 출간 이후에도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편집자 미테랑은 이 방대한 서신들을 총 다섯 시기로 구분해 시간순으로 배열하고 각 시기의 주요 전기적 사실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더했다. 1858-1860년 '함께하는 삶으로의 부름', 1861-1864년 '낙선자들', 1865-1870년 '살롱전을 오가며', 1871-1877년 '인상주의-라는 표현의 운명', 1878-1887년 '흘러간 날들의 인상'으로 나뉜 각 시기는 두 예술가의 성장 과정과 19세기 프랑스의 역사적 격변을 동시에 보여준다.
번역자 나일민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1대학교에서 미술사 학사·석사와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다. 번역 작업에서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대표 문학비평 시리즈인 '블랑슈 컬렉션'을 대본으로 삼아 편지 원문 전체를 온전히 번역하는 데 중점을 뒀다.
편지들 속에는 거장의 위용보다는 평범한 청춘들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난다. 성적과 여자 이야기, 풋사랑, 미래와 꿈, 예술에 대한 고민 등을 소재로 한 편지들에서는 후에 거장이 될 두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종업식에서 네가 우수상의 왕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많은 박수갈채가 시상식을 장식할까! 나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할 거야…허접한 글을 계속 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지?"라는 1860년 졸라의 편지는 당시 청년들의 솔직한 심정을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두 친구의 삶은 각각 다른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졸라는 파리에서 문학 활동과 비평을 통해 조금씩 인정받으며 '테레즈 라캥'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었다. 반면 세잔은 출품하는 살롱전에서 번번이 낙방하며 경제적 독립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세잔은 파리와 엑스를 오가며 자연을 관찰하고 인상주의와 고전주의의 장점을 합쳐 미래로 나아갈 예술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성향도 극명하게 달랐다. 신중하고 세련된 매너와 뛰어난 필력으로 파리의 문학·예술계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졸라와는 달리 세잔은 단정치 못한 행색과 거친 매너로 파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럼에도 두 친구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격려를 놓지 않았다.
편지가 오간 횟수와 내용의 친밀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현격히 줄어들었다. 졸라는 파리의 복잡한 생활과 문단 활동, 언론 활동, 유대인 옹호 활동 등으로 바빠졌고, 세잔은 시골 마을에 은거하며 점점 종교와 '영원한 가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등에 영향을 받으며 늙어갔다. 보수적 예술인들은 세잔을 견고한 성벽처럼 감싸며 '나는 고발한다'를 쓰고 드레퓌스 사건을 주도한 졸라와 거리를 두라고 끊임없이 충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연결하는 끈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유년의 기억이 그들을 이어줬다. 세잔은 졸라와 함께 거닐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년의 걸작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려나갔고, 졸라는 '루공-마카르총서'의 마지막 작품 '파스칼 박사'에서 햇볕에 그을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많은 예술가가 그랬던 것처럼 세잔과 졸라도 늙어가며 어린 시절에 집착하며, 흩어지고 조각난 유년의 기억을 각자의 자리에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기워나갔다.
'교차된 편지들 1858-1887'에 대한 성공적인 반응은 깊이 있는 인문학 콘텐츠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가들의 인간적 면모와 창작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아울러 시대를 초월한 예술과 우정의 가치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