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로 유명해진 의사, 병원 그만두고 택한 뜻밖의 행보
2025-07-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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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구현하는 건강한 노화의 미래
‘저속노화’라는 개념을 주창해온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최근 병원에서 사직하고 서울시의 국장급 자문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랫동안 강조해온 건강한 노화를 개인의 실천 수준을 넘어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다. 정 교수는 “저속노화의 고속 정책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는 31일 정 전 교수를 ‘서울건강총괄관’으로 위촉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이 직위는 3급 국장급에 해당하며, 정 총괄관은 서울시 정책 전반에 건강 관점을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 전 교수는 5년 가까이 재직한 서울아산병원을 지난달 말 퇴사했으며, 7월 1일 공개 채용 절차에 지원해 서류와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됐다. 공식 임무는 8월부터 시작되며, 월 2회 이상 근무할 예정이다. 서울시 측은 해당 자문관의 급여를 월 336만 원(세전) 수준으로 책정했다. 참고로 정 전 교수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받던 연봉은 약 1억 5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정희원 총괄관은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저속노화 식사법』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일반인의 건강 습관 개선을 강조해 왔으며,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와 언론 기고, 방송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생활 속 노화 지연법’을 꾸준히 전파해왔다. 최근에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서울시와의 인연은 2년 전 월례 강연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 전 교수는 서울시민의 건강 현황과 선진국 대비 미흡한 지점들을 지적했고, 이 강연이 계기가 되어 정책 자문 역할로 이어지게 되었다.
서울시 자문관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정 전 교수는 “개인의 노력이 전체 국민의 건강 지표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며, “보다 넓은 영향력을 위해서는 정책이라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병원을 휴직하고 서울시에 연수생으로 들어가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서울시 측의 “직접 와서 정책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응하면서 정식 지원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서울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보건복지부는 구조상 업무가 과별로 세분화돼 있고, 인사이동이 잦아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작지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갖춘 곳이 서울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추진할 주요 정책에 대해 정 총괄관은 “음식 포트폴리오를 건강한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소아·청소년의 초가공식품 및 당류 섭취를 줄이기 위한 ‘넛지 정책’ 도입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과자나 음료를 아이들의 눈높이보다 높은 진열대로 옮겨 구매 유인을 낮추는 방식이다.
또한 그는 “비행기에서 음료를 제공할 때 설탕 음료 외에 무가당 음료나 생수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며, “식당에서는 추가 요금이 들더라도 잡곡밥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정책이 ‘은근한 압박’으로 작용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 총괄관은 현재의 식품 및 건강 환경을 “단맛, 기름진 맛, 짠맛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하며, “이대로는 비만과 노쇠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서울이 먼저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면 타 지자체들도 뒤따를 것”이라며 선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서울을 ‘압력밥솥’에 비유한 그는 “도심의 과밀, 스트레스, 이동 불편 등으로 누적된 압력을 걷기 좋은 환경과 녹지 확충 등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서울은 고령화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고, 재정 여건도 상대적으로 우수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정 총괄관이 주목하는 또 다른 분야는 ‘퇴원 이후의 건강 관리’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는 급성기 치료에 집중돼 있어, 퇴원 후의 재활이나 회복 관리가 소홀하다”며, “재가 재활 서비스를 통해 회복을 도와야 환자가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약 ‘저속노화 정책’이 정책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준비가 되어 있다”며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희원 총괄관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레지던트를 수료했으며, KAIST에서 대체복무를 마친 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2020년 9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노년 내과 전문의로 활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