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큰 야생동물이 청와대에 서식한다고?... 청와대 금붕어 잡아먹기까지

2025-08-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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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관람 임시 종료되면서 청와대 야생동물에 관심 집중

청와대 전경 / e영상역사관(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
청와대 전경 / e영상역사관(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
청와대 관람이 1일부로 임시 종료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예고한 복귀를 앞두고 사전 점검을 위해서다. 이 대통령은 이르면 올해 안에 청와대로 들어갈 계획이다. 과거 청와대엔 사람만 살진 않았다. 청와대 넓이는 7만 6685평이나 된다. 산과 연결돼 있는 까닭에 다양한 야생동물이 청와대를 들락거렸다. 청와대 시대가 다시 열리면서 청와대에 사는 야생동물에 국민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특별한 공간이다. 바로 뒤편의 북악산, 인왕산과 함께 숲으로 이어져 있어 각종 야생동물의 서식지 역할을 했다. 사람의 발길이 적어 동물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2000년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따르면 당시 청설모, 다람쥐, 꿩 등 다양한 동물들이 북악산과 청와대 경내를 오가며 살았다. 특히 산비둘기 한 쌍이 청와대 경내에서 부화해 작은 생태공원을 이뤘다.

청와대에 방사됐던 꽃사슴들 / 청와대
청와대에 방사됐던 꽃사슴들 / 청와대

청와대 야생동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너구리다.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에서 살았던 너구리들은 '로얄 너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통령 거처와 왕궁에서 사는 데다 아무도 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너구리는 최소 1998년 이전부터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너구리들은 청와대에서 특권을 누렸다. 사람을 봐도 달아나지 않고 뻔히 쳐다보기도 했다. 일부 경호원들은 빵 조각 등을 주기도 했다. 너구리들은 청와대 본관 앞까지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특권을 누렸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는 야생 식량이 별로 없기에 너구리들은 식당 쓰레기를 뒤지거나 관저 앞에서 조류 먹이를 가로채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청와대를 찾은 전남 소록분교 학생들에게 너구리 가족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권 여사는 꿩, 비둘기, 까치들이 먹으라고 관저 앞에 콩을 뿌려 놓으면 너구리 가족이 내려와 먹는다고 했다. 너구리들이 금붕어를 잡아먹었는지 통통하더라는 말도 했다.

청와대에 살았던 너구리 / 연합뉴스
청와대에 살았던 너구리 / 연합뉴스

청와대 너구리들의 운명은 2004년 7월 급변했다. 청와대는 너구리 10마리를 생포해 동물보호단체에 넘겼다. 너구리들은 영양실조, 피부질환, 기생충 감염 등의 증세를 보였다. 도심에서의 부적절한 먹이와 서식 환경 때문이었다. 동물단체는 치료 후 7마리를 경기 파주시 적성면의 민통선 일대에 방사했다. 3마리는 치료 과정에서 병사했다. 당시 청와대는 서식 환경이 열악하고 광견병 등 병원균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자문을 듣고 청와대 관람객들을 위해 서식지를 옮겼다고 해명했다.

너구리 대신 청와대는 굴토끼 12마리를 구입해 2004년 8월 방사했다. 이들은 빠르게 번식해 40여 마리로 늘어났다. 토끼는 너구리보다 온순하고 질병 전파 위험이 적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야생 너구리의 청와대 출입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7년 넘게 일하고 있는 강승지 작가가 쓴 에세이 '청와대 사람들'에 따르면 밤사이 야생 너구리나 고양이, 왜가리가 청와대 연못의 잉어를 잡아먹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그는 "간밤에 야생 너구리가 연못 잉어를 잡아먹진 않았는지 챙기는 직원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여전히 야생동물들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류도 청와대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2000년 7월 13일에는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소쩍새가 청와대에 날아와 둥지를 틀고 밤마다 먹이를 사냥했다. 소쩍새는 올빼미과의 야행성 조류로 주로 곤충류를 먹고 산다. 독특한 울음소리로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받아온 새다.

조상들은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점쳤다. 봄철에 "소쩍당 소쩍당"하고 우는 소리는 "솥이 적으니 더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알고 풍작을 기대했다. 반면 "소탱 소탱"으로 울면 "솥이 텅텅 비었다"는 의미로 그해 농사는 솥이 텅텅 빌 정도로 농사가 안 돼 흉년이 될 것으로 알았다. 천연기념물인 소쩍새가 청와대에 둥지를 튼 것은 이곳의 자연환경이 그만큼 잘 보존돼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청와대 인근엔 사슴도 살고 있다. 2019년 청와대에서 방사한 사슴들이 북악산에 자리 잡고 번식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야생동물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승지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국기를 다림질하는 직원, 대통령의 얼굴을 기록하는 사진기자와 함께 조용히 자연을 돌보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지켰다. 온실에서 식물을 돌보는 직원들은 "모두가 눈앞의 모니터에만 몰두할 때, 그들은 조용히 자연을 돌보고 있었다"고 묘사됐다.

이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식물에 물을 주고, 밤사이 사라진 만큼 새 잉어를 채우는 일을 담당했다. 강 작가는 "그 일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가장 무해한 일이었으니까"라고 적었다. 또한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온실에서 배웠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식물에 물을 주는 일, 잉어를 다시 넣는 일, 손톱에 흙을 묻히는 일"이라고 기록했다.

청와대의 야생동물 서식은 이곳이 단순한 정치 공간이 아니라 도심 속 생태공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0년 국정브리핑은 "서울도심 한가운데에 야생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보존된 청와대는 바로 뒤의 북악산, 인왕산등과 함께 그린벨트를 이뤄 남산과 함께 서울의 작은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젊은이들과 함께 한 프로그램에서 데이트코스로 청와대를 추천할 만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실제 주말이면 가족단위로 산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22년 5월 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뒤 하루 뒤인 5월 10일 오전 7시부터 1호 청와대 관람객이 입장했다. 단 하루 만에 청와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이 됐다.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고, '어서 오세요'가 붙은 포토존이 생겼으며, 출입 금지였던 초소문이 활짝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가 확정되면 야생동물들과의 공존 방식도 다시 주목받을 전망이다. 과거처럼 자연스러운 공존을 택할지, 아니면 안전과 방역을 이유로 새로운 관리 방식을 도입할지 관심이 쏠린다. 너구리 사례에서 보듯 야생동물 관리는 생태계 보존과 안전 관리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 관저로 기능하게 되면서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온 야생동물들의 운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살았던 꽃사슴들 2008년 사진. / 청와대
청와대에 살았던 꽃사슴들 2008년 사진. / 청와대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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