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농가 7곳뿐…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400년 역사의 명품 '한국 과일'
2025-08-1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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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광주서만 재배되는 귀한 여름철 과일
기후위기로 1997년 34곳→최근 7곳 줄어
임금님 진상품으로 알려진 400년 역사의 무등산 수박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국내 광주, 그중에서도 광주 북구 금곡·충효동 일대에서만 생산되는 귀한 과일인 무등산 수박의 생산이 머지않아 중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후 위기 때문이다.
무등산 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2~3배는 큰 크기를 자랑한다. 맛도 일반 수박보다 감칠맛과 당도가 훌륭해 옛날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재배에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농가가 무등산을 떠나고 있다. 1997년 34곳이었던 무등산 수박 재배 농가는 현재 단 7곳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매년 무등산 수박 작황 부진이 이어지자 광주시와 북구는 2년 전부터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생산 장려금을 지원하고 치열막을 설치하며 농가 지원에 나섰다.
북구 관계자는 "무등산 수박이 지역의 여름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지만 기후 변화에 맞설 수 있는 기술과 인력 확보 없이는 존속이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지속 가능한 재배 환경을 만들기 위해 행정과 농가가 함께 지혜를 모아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 '산이 키운 보물'인 이유
무등산 수박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박은 무등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며 그 외의 지역에서는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등산 내에서도 경작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곳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무등산 수박의 특징 중 하나는 줄기 하나에서 단 한 통만 열매를 맺는다는 점이다. 일반 수박에 비해 수확량이 현저히 적고 그만큼 희소성이 크다.
무등산 수박을 키우려면 반드시 평지가 아닌 해발 300m 이상의 산기슭을 선택해야 한다. 이곳의 흙은 경토가 깊고 통기성이 좋은 사질양토여야 한다. 재배지는 경사진 땅이 적합하며 단순히 땅을 고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름 1m, 깊이 1.2m 이상 구덩이를 파야 하고 그 속에 화학 비료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무등산 수박은 오직 완전히 발효된 퇴비나 유기질 비료 같은 자연 비료만 허용된다. 이 까다로운 재배 과정은 무등산 수박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일반 수박은 여름철 초반에 수확하지만 무등산 수박은 산기슭의 특성 때문에 8월에서 10월 사이 늦은 시기에 수확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환경을 흉내 낼 수 없어 무등산 수박은 오직 무등산 기슭에서만 자라난다.
한 번 수박을 재배한 땅에서는 바로 다시 심을 수 없다. 인삼 재배와 마찬가지로 땅의 힘을 회복시키기 위해 최소 3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연속적인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 400년 전통의 위엄
무등산 수박에는 전통적으로 지켜야 할 금기사항도 많다. 결실기가 다가오면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그 가족들은 상가에 가는 일을 피해야 한다. 또 상중에 있는 사람들은 밭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재배자들의 철칙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무등산 수박은 단순히 농산물이 아니라 특별한 풍습과 전통이 함께 이어지는 독특한 존재다.
생산량이 적고 재배 조건이 까다로우므로 무등산 수박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특히 상품성이 뛰어나 고급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크기가 일반 수박보다 훨씬 큰 것도 특징이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수박은 4~5㎏ 정도인데 무등산 수박은 이보다 3배 이상 큰 15㎏ 이상으로 자란다. 이렇게 자란 수박 한 통의 가격은 15만 원이 넘는다. 무게가 25㎏에 이르는 특품은 5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그보다 크고 품질이 뛰어난 것은 1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크기뿐 아니라 맛과 품질에서도 뛰어나 귀한 손님을 위한 선물로 손색이 없다.
◎ 무등산 수박의 가치
무등산 수박은 단순히 농작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인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수박을 키우기 위해 농부들은 적합한 땅을 찾고, 땅을 갈아엎고, 거대한 구덩이를 파는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화학 비료를 거부하고 자연이 만든 비료만 사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무등산 수박이 자랄 수 있다. 수확 시기도 늦고 다시 재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런 한계가 오히려 무등산 수박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이처럼 까다로운 재배 조건과 희소성 덕분에 무등산 수박은 ‘산이 키운 보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오직 무등산의 기후와 흙, 그리고 전통적인 재배 방식이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등산 수박을 키우는 농민들은 단순히 수박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