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공장 폐수가 흘렀는데…수질 깨끗해지자 발견된 '멸종위기종'
2025-08-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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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하천에서 생명의 강으로 변신한 양재천
서울 강남과 서초를 가로지르는 양재천은 도심 속 대표적인 하천 산책 코스다.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산책 코스로도 유명하지만, 주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붐빈다. 사람의 발걸음만 많은 게 아니다. 물 아래, 유속이 느린 구간과 얕은 여울, 수풀 아래에는 다양한 토종 물고기들이 자리를 잡고 산다.

양재천은 경기도 과천시의 청계산 자락에서 발원해 서울 서초구, 강남구를 지나 탄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전체 길이는 약 15.6km에 이르며, 복원 전에는 오염된 도심 하천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정비가 이뤄지며 자연형 하천으로 탈바꿈했고, 지금은 수질이 크게 개선되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하천으로 자리 잡았다.
■ 멸종위기종부터 천연기념물까지…양재천의 ‘수중 주민들’
양재천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물고기는 버들치, 참붕어, 참마자, 돌고기, 피라미, 끄리 등이다. 이 중 일부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거나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로 분류돼 주목할 만하다.
가장 대표적인 보호종은 바로 돌상어(천연기념물 제259호)다. 돌상어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주로 남한강 유역이나 청정 1급수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서울 도심의 하천에서 이 물고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양재천의 수질 회복과 생태계 회복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또한 쉬리도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종이다. 쉬리는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의 맑고 찬 물에서 주로 서식하며, 돌 사이를 숨터로 삼고 산다. 쉬리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양재천에서 이들이 발견됐다는 건, 수질이 상당히 양호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피라미와 붕어는 양재천 수계 전역에서 쉽게 관찰된다. 여름철 수심이 얕은 구간에서는 떼를 지어 유영하는 피라미 무리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물속에서 반짝이는 비늘과 빠른 움직임에 아이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곤 한다.
■ 자연형 하천 복원 이후 돌아온 생명들
양재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가 흘러드는 대표적인 도시 하천이었다. 수질은 4급수 이하로 떨어졌고, 악취와 오염물질 때문에 접근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서울시와 강남구·서초구가 하천 정비 사업을 통해 ‘자연형 하천’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하천 바닥은 콘크리트 대신 자갈과 모래로 다시 덮였고, 둔치에는 갈대와 부들, 줄풀 같은 수생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물속에는 물고기뿐 아니라 게아재비, 물장군, 송사리, 납자루 같은 곤충과 소형 어류도 돌아왔다. 수서곤충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물고기는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렇게 생태계의 순환 고리가 다시 작동하게 된 것이다.
특히 겨울에는 왜가리, 백로, 물총새 같은 조류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도 쉽게 목격된다. 양재천이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생태학습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생태와 일상, 동시에 누리는 서울의 공간
양재천은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도심 속에서 천연기념물급 물고기와 멸종위기종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양재천의 생물 다양성은 단지 환경보호의 상징을 넘어, 시민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하천 복원 이후에는 다양한 시민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매년 여름, 양재천 생태탐사나 어린이 자연교실 등 지역 주민을 위한 체험형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생태해설사와 함께하는 수중 생물 관찰 활동도 인기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