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원일 때 쟁여둘걸…돈 있어도 선뜻 못 사 먹는 '국민 음식' 정체
2025-08-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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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2781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가장 비싼 기록
최저 2850원부터 최고 6300원까지 무려 두 배 이상 차이
국민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 음식’ 삼겹살이 이제는 선뜻 사기 어려울 만큼 비싸졌다. 최근 대형마트가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특가 행사로 100g당 990원에 내놓을 정도였지만, 이상기후와 공급 불안 여파로 가격은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소비자들의 시름을 키우고 있다.

18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돼지고기 삼겹살의 100g당 평균 소비자가격은 2882원으로 집계됐다고 헤럴드 경제는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날(2554원)보다 12.8% 올랐고, 평년 가격(2619원)보다도 10%가량 높은 수준이다. 이달 평균 가격 역시 2754원으로, 2022년 7월(2781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가장 비싼 기록을 갈아치웠다.
삼겹살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00g에 2400~2500원대를 유지했으나,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달부터는 2700~280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지역별로는 편차가 더 극심하다. 제주 지역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3152원, 전북 역시 3008원으로 이미 3000원을 돌파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근(600g)’만 사도 2만 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가격 편차는 유통채널과 상품 등급에 따라 더 커졌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삼겹살 100g 가격은 최저 2850원부터 최고 6300원까지 무려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백화점 채널의 고급 삼겹살 가격은 지난달 5800원에서 이번 달 6300원으로 뛰어올랐다. 최고급 등급 삼겹살 한 근을 살 경우 3만 7800원이 필요하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즐기는 외식 메뉴’였던 삼겹살이, 일부 가정에선 선뜻 사기 어려운 고급 음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깔려 있다. 먼저 상반기 도축량이 줄어든 가운데 가공용 원료육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달렸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도 이미 올해 돼지 도매가격이 ㎏당 5300~5500원 선으로 전년 대비 3.5% 안팎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 기후 재난이 결정타를 날렸다. 폭염과 폭우가 이어진 올여름, 전국 농가의 가축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6일까지 폭염으로 죽거나 폐사한 가축은 151만1854마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90만250마리) 대비 무려 67.9%나 늘어난 수치다. 돼지 피해 규모만 해도 8만6938마리에 달해 삼겹살 공급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위기 경보가 지난달부터 ‘심각’ 단계를 유지하면서, 농가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문제는 삼겹살만이 아니다.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만큼, 이상기후는 먹거리 전반의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해, 지난해 7월 이후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151개 품목 가운데 76.8%에 해당하는 116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새 올랐다. 특히 수박(20.7%), 시금치(13.6%), 귤(15.0%), 열무(10.1%) 등은 두 자릿수 폭등세를 보였다.

다만 소비자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유통업계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대형마트들은 삼겹살 가격 급등 속에서도 간헐적으로 할인 행사를 내놓으며 발길을 붙잡고 있다. 홈플러스는 최근 ‘크레이지 4일 특가’ 행사로 미국산 ‘옥수수 먹고 자란 돼지 삼겹살·목심’을 100g당 990원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이마트는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1등급 이상 삼겹살과 목심을 신세계포인트 적립 고객에 한해 반값에 판매했고,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통큰데이’ 특가전을 통해 ‘끝돼 삼겹살·목심’을 절반 가격에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한시적 행사가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삼겹살을 비롯한 주요 식품 가격 불안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 차질, 전염병 리스크, 국제 원자재 가격 등 변수들이 얽혀 있어 가격 안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부가 민생 회복 차원에서 발행한 소비쿠폰이 단기적으론 소비를 자극해 또 다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시기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소고기와 일부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던 전례도 있다.

국민에게 삼겹살은 단순한 고기를 넘어 가족 외식과 회식 문화의 중심에 자리한 음식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말이 한국인의 일상과 정서를 상징해온 만큼, 가격 불안은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서민 체감 물가와 직결된다.
‘990원 삼겹살’을 추억하며 “그때 쟁여둘 걸”이라고 아쉬워하는 소비자들의 탄식 속에, 이젠 “차마 못 사 먹는 국민 음식”이 된 삼겹살의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기후 위기와 물가 불안이 계속되는 한, 이 탄식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