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없어서 병원 뺑뺑이, 아기는 앞을 못 보게 됐다
2025-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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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의료의 그림자, 위험한 공백
골든타임을 놓친 소아 응급의료의 현실
강원도 삼척에 거주하는 30대 부부의 딸이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뇌 손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생후 12개월로 건강하던 아이는 현재 앞을 보지 못하고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달 폐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심정지로 뇌에 손상을 입은 것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삼척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후회된 적은 처음”이라며 “사고가 아니라 치료를 늦게 받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이기에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부부는 아침 일찍 삼척의료원을 찾았으나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큰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후 사설 구급차를 타고 강릉아산병원으로 향했지만, 이곳에는 소아 호흡기 전문의가 없었다.
결국 춘천 강원대병원으로 전원됐으나 아이의 상태는 계속 악화됐고, 밤늦게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이송됐다. 삼척에서 서울까지 15시간 넘게 330km를 이동했지만, 그 과정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셈이다.
아버지는 “이곳에 사는 사람도 사람인데, 아이가 최소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소아과 기피 현상과 전문의 이탈이 계속되면서 지방 의료 공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전국 시·군·구 가운데 14곳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은 “환자 수에 따른 수익성보다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소방서처럼 취약 지역에서 의사가 상시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골든타임 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비수도권과 필수과 중심의 의료 공백은 여전히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방 소아청소년과 붕괴는 곧 응급의료 체계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응급·필수과 중심의 공공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방 근무를 기피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