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없어서 못 먹는데...10년 뒤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한국 토종 과일' 정체

2025-08-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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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

한국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 하나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 재배 농가가 25년간 80% 가까이 줄어든 이 과일은 현재 전국에서 단 7곳 농가에서만 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계속되면 10년 뒤에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수박 농가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수박 농가 이미지

무등산에서만 자라는 '왕의 수박'...구입 경쟁률도 치열

이 과일의 정체는 광주 무등산에서 재배되는 무등산수박이다. 한국 대표 명품 과일로 꼽히는 무등산수박은 일반 수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검은 줄무늬 대신 진한 녹색 껍질을 가졌으며, 한 개 무게가 최소 7㎏에서 최대 25㎏까지 나간다. 일반 수박보다 2~3배 큰 크기다.

무등산수박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 북구 금곡동 일대 해발 300~400m 무등산 기슭에서만 자란다. 다른 지역에서 재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강원도와 경북, 전남 영암 등에서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성공 사례가 없었다.

이 수박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맛과 향이다. 부드러운 과육과 강한 단맛, 특유의 감칠맛 때문에 '왕의 수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크기에 따라 8㎏은 7만 원대, 24㎏은 27만 원대에 판매되며 주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올해에는 광주 북구 7개 농가에서 약 2000통만 한정 생산돼 지난 22일부터 출하를 시작했다. 국내외 수요에 비해 극도로 희소한 상황이다.

백화점 등에서 한정 수량 조기 완판이 일반적이고, 광주 공동직판장에서는 개장 초에 빠르게 소진되는 경우가 많아 구입 경쟁률도 치열하다.

거대한 크기 자랑하는 무등산수박 / 뉴스1
거대한 크기 자랑하는 무등산수박 / 뉴스1

25년간 농가 수 4분의 1로 급감

하지만 무등산수박의 미래는 어둡다. 2000년 32곳이던 재배 농가는 2009년 16곳으로 줄었고, 올해는 7곳만 남았다. 재배 면적도 2000년 12㏊에서 올해 2.6㏊로 축소됐다. 연간 출하량은 과거 4000개에서 2020년 이후 2000개 안팎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 출하 예정량은 2300개에 불과하다. 7개 농가에서 6000~7000주의 모종을 심었지만 실제 수확한 것은 2500주 정도다. 착과율이 낮고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무등산수박영농조합법인 문광배 총무(52)는 농민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대로라면 10년 뒤엔 없어진다고 봐야죠"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 총무는 "아버지가 한창 농사를 짓던 30년 전만 해도 40여농가가 무등산 700m 지점까지 농사를 지었다"며 "무등산국립공원 지정으로 재배지가 300m 지점으로 한정되고 고령화로 농가수도 줄면서 내 뒤로 새롭게 농사를 시작한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무등산수박을 수확 중인 모습 / 뉴스1
무등산수박을 수확 중인 모습 / 뉴스1

기후 위기와 까다로운 재배법이 발목

무등산수박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재배의 어려움이다. 이 수박은 농가들이 직접 씨앗을 채취해 파종하며, 화학비료 대신 유기질 퇴비만 사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기른다. 줄기가 10m까지 자라고 한 줄기에서 수박 하나만 수확할 수 있다.

김영기 무등산수박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농민신문에 "우수농가의 경우 착과율이 70% 정도고, 보통은 50%도 안된다"며 "이마저도 열매가 한창 클 여름에 장마가 길어져 햇빛을 못 받으면 시들고, 이후 갑자기 날이 뜨거워지면 열매가 터져 수확 때는 30∼40%도 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과거 무등산 해발 300~400m 지역은 여름에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서 수박이 잘 자라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폭우와 폭염, 열대야가 반복되면서 수박이 죽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체계적인 재배 기술이 없는 것도 문제다. 종자 개량이 이뤄지지 않아 개별 농가가 자가 채종한 씨를 심는다. 관수나 비료 살포도 정해진 매뉴얼 없이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다. 2019년 광주시와 전남대학교가 병해충과 기후변화에 강한 종자 개량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반수박보다 2~3배 이상 큰 무등산수박 / 뉴스1
일반수박보다 2~3배 이상 큰 무등산수박 / 뉴스1

지자체 지원 강화에도...한계 부딪혀

광주시와 북구는 무등산수박 보존을 위해 지원을 늘리고 있다. 시는 재배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생산장려금을 ㎡당 770원에서 올해 1950원으로 2.5배 인상했다. 기후 위기에 대비해 차광·차열 시설 지원도 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10월 무등산수박 육성을 위한 2025~2027년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비닐하우스 시설 개선 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농가들은 이런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단기적인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는 농가 인력과 재배기술 개발이 필수적이고 지적한다.

무등산수박의 미래는 결국 젊은 농민 유입에 달려 있다. 현재 7개 농가 모두 고령 농민들이 운영하고 있어 은퇴 후 대를 이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문광배 총무는 2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무등산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훨씬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만큼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은 후계농을 육성하고 종자도 개량해야 한다"면서 "전문 재배단지 조성을 통해 청년 농민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등산수박은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60여 일간만 출하되는 계절 한정 과일이다. 희소성과 독특한 맛 때문에 여전히 수요는 많지만, 공급 부족으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토종 과일의 대표주자인 무등산수박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면 종자 개량과 재배 기술 발전, 후계 농민 육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튜브, 광주MBC뉴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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