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껍데기에 찍힌 ‘이 숫자’... 차이를 알면 선택 기준이 달라집니다
2025-08-31 07:30
add remove print link
알고 먹는 계란, 껍데기 숫자에 담긴 생산 배경
대형마트 식품 매대 한쪽을 가득 메운 계란 코너 앞에서 소비자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는 가격표를 비교하며 한참을 서성이고, 또 다른 이는 포장 상자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유통기한을 꼼꼼히 살핀다.

어떤 사람은 브랜드나 크기를 기준으로 고르고, 어떤 사람은 단순히 가장 앞에 놓인 판을 집어 들기도 한다.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눈길이 가는 곳은 가격과 날짜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계란 껍데기에는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다. 총 10자리로 구성된 난각번호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닭이 어떤 환경에서 사육됐는지, 어느 농장에서 언제 낳은 것인지까지 담아낸 일종의 생산 이력이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계란 한 알에는 사실 닭의 삶과 생산 현장의 조건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약 157억 개의 계란이 생산된다. 이를 낳는 산란계는 7천만 마리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는 ‘배터리 케이지’라 불리는 좁은 철망 속에서 지낸다.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A4 용지 한 장 정도에 불과하다. 모래 목욕이나 홰에 오르는 본능적 행동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이런 밀집 사육 환경은 위생 문제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현실을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가 난각 번호다. 2019년 8월부터 모든 계란에는 ‘산란일자(4자리) + 농장 고유번호(5자리) + 사육환경번호(1자리)’ 형태의 10자리 숫자가 표기된다. 맨 앞 4자리는 산란일자, 맨 뒤 1자리가 사육환경을 뜻한다.
사육환경번호는 1번이 방사 사육, 2번이 평사 사육, 3번은 개선형 케이지, 4번은 기존 케이지를 의미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닭의 활동 공간이 넓고 조건이 나은 편이다.

예를 들어 난각번호에 ‘0823M3FDS2’라고 쓰여 있다면 ‘0823’은 8월 23일에 낳은 달걀, ‘M3FDS’는 농장 고유번호, 마지막 숫자 ‘2’는 평사 사육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임을 의미한다. 소비자는 난각 번호만 확인해도 계란이 어느 농장에서, 어떤 환경에서, 언제 생산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1번이나 2번 계란을 대형마트에서 쉽게 찾기란 어렵다. 가격 또한 일반 계란보다 두세 배가량 비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사육 환경이 영양 성분 차이를 크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들은 난각 번호를 기준으로 구매를 달리하며, 맛이나 식감에서 차이를 느낀다고 말한다.
난각 번호 제도는 생산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식탁에 오르는 계란 한 판에도 닭이 살아온 환경과 농장의 관리 방식이 담겨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는 최소한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