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사망할 수도 있어…암은 아닌데 '숨 차는 고통' 따르는 병

2025-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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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동맥 고혈압, 생존을 위협하는 침묵의 질병

‘71.8%.’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5년 생존율(2023년 기준)이다.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73%인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암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위험한 질환임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함께 환자들이 꼭 필요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생존율 여전히 낮은 현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폐동맥 고혈압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2020년 3175명에서 지난해 3852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실제 환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의 1%가량이 앓고 있다고 추정되는데, 국내 인구를 고려하면 약 50만 명이다. 여전히 상당수 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욱진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환자 가운데 28%는 5년 안에 사망한다”며 심각성을 짚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 순환기계의 암이라 불리는 이유

폐동맥 고혈압은 폐소동맥이 점차 좁아지고 막히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폐로 혈액을 보내는 압력이 높아지며 심장에 큰 부담을 준다. 특히 심장의 우심실 기능이 떨어지면 혈류가 정체돼 소화 불량이나 다리 부종 같은 증상이 쉽게 나타난다. 환자 사망 원인 가운데 26%는 돌연사일 정도로 예후가 나쁘다. 생존율을 고려하면 환자 10명 중 3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어 ‘순환기계의 암’으로 불린다.

◆ 40대 여성에게 많은 발병

이 질환은 주로 40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숨이 가쁘거나 다리가 붓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가장 흔히 호소하는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일부 환자는 횡단보도 하나를 다 건너지 못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일상적인 활동조차 마라톤을 뛰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은 “물속에서 항상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숨이 차고 피곤하며 가슴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 치료법과 한계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약물 치료가 우선 적용된다. 그러나 약으로도 효과가 없을 경우 폐 이식까지 고려해야 한다. 1980년대에는 질환에 대한 인식 부족과 늦은 진단으로 국내 환자 생존율이 34%에 그쳤다. 최근 71.8%까지 개선됐지만 일본(96%), 대만(78%) 등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치료 환경이 해외 선진국과 차이가 크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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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도입 지연이 문제

전문가들은 환자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효과적인 신약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지난 30년간 4개 기전의 13종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국내에 들어온 것은 60%에 불과하다. 특히 1995년 개발돼 생존율 개선에 크게 기여한 플로란(성분명 에포프로스테놀)은 아직도 한국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플로란을 쓰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 제도적 지원 필요성

전문가들은 글로벌 제약사가 국내 시장을 외면하는 이유로 가격 통제와 시장 규모 문제를 꼽는다. 정 교수는 “희귀 의약품은 다른 국가에서 약값이 깎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 시장 진입이 지연되고 있다”며 “코리아 패싱을 막기 위해 신약 도입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치료제 허가 절차를 넘어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ome 위키헬스 기자 wikihealth75@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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