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가 말랐다” 울릉도서 안 잡혀 금값 돼버린 '국민 수산물' 정체
2025-09-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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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산물 3년 연속 1위에 빛나는 '국민 수산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산물 3년 연속 1위에 빛나는 '국민 수산물'이 최근 울릉도를 비롯해 동해안 지역에서 씨가 말라 가고 있다. 마리당 수천 원 하던 이 수산물은 이제는 2만 원까지 치솟으며 '금값'을 호가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수산물 1위, 이후 2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이 인기 수산물의 정체는 바로 오징어다. 2025년 기준 연근해 신선 냉장 오징어의 평균 산지 가격은 kg당 9511원으로, 전년 대비 143.4%나 급등했다. 과거 마리당 3000~5000원 수준이던 오징어가 최근에는 8000원에서 최대 2만 원까지 거래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오징어의 대표 산지였던 울릉도 상황은 심각하다. 1일 경북매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울릉군수협 위판장은 경매할 오징어조차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오징어마저 25㎝ 칼보다 작은 크기였고, 한 상인은 "이런 건 잡아서는 안 된다. 2마리에 1만 원이라 해도 미안해서 못 팔겠다"고 토로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날 울릉도에서 세 척의 어선이 출항했지만 겨우 40∼50마리만 잡는 데 그쳤다. 기름값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연간 일정 횟수 이상 출어해야 어선 감척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는 실정이다.
오징어 급감의 주요 원인으로는 기후변화와 중국 어선의 무분별한 조업이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바다 연평균 표층 수온이 18.74도로 1968년 관측 이래 57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과 1년 전(18.09도)보다 0.65도나 상승한 수치다. 수온 상승으로 어군이 북상하면서 동해안과 울릉도 근해에서는 오징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울릉도 어민들은 중국이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의 이동 경로에서 그물을 이용해 쌍끌이 조업을 하는 바람에 "씨가 말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울릉도 오징어 위판 실적은 2000년대 초까지 연간 1만t이었으나, 중국 어선이 북한 수역에서 쌍끌이 조업을 시작한 2004년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2010년대에는 2000t 수준으로 떨어졌고, 2016년에는 700t대까지 줄면서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이 잇달았다.

울릉도 어선 감척 신청도 급증했다. 2024년 말 기준 울릉도 총 어선 129척 중 90% 이상이 오징어 채낚기어업에 종사하는데, 올해만 전체 어선의 24%에 해당하는 30여 척이 감척을 신청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제 감척 확정은 13척에 불과하다.
감척에서 탈락한 어선들은 항구에 정박만 한 채 선박 관리만 해야 하는 처지다. 오징어잡이 허가 선박으로는 다른 어종을 잡을 수도 없고 낚시선 대여도 규정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 감척 재신청을 위해서는 연간 60일 이상 조업 실적을 채워야 하므로,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도 유류비와 인건비를 들여 억지로 출항할 수밖에 없다.
박일래(울릉 저동)씨 등 울릉도 어민들은 경북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바다에 나가도 소득이 없다"며 "감척 신청 자격이라도 유지하려고 연중 60일 이상 하루하루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울릉도 어민들을 위해 선박당 최대 2000만 원의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했고, 올해는 28억 8700만 원을 확보해 감척 예산을 전년(18억 3000만 원) 대비 늘렸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단기 지원책이 아닌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때 '국민 수산물'로 불리며 서민들의 식탁을 책임졌던 오징어가 이제는 '금징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현실은 기후변화 시대 수산업계가 직면한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