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너무 친숙한데... "멸종 우려" 최악 예측까지 나오는 이유
2025-09-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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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충 한 마리에 이 벌레 1만 5000마리까지 붙어

영일만 바다와 맞닿은 야산이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11월 중순 단풍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 붉은 색은 낙엽이 아니라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의 잎이다. 포항 남구 동해면 마산리에서 펼쳐진 이 광경은 한국 산림이 맞닥뜨린 크나큰 위기를 상징한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곰솔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이다.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매개충에 달라붙은 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하면 수관을 막아 물 공급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나무는 최상단부터 적갈색으로 변해 점차 말라 죽는다. 감염된 소나무는 거의 100% 죽는다. 이 때문에 소나무재선충을 ‘소나무 버전 에이즈’라고 부른다.
소나무재선충은 북미대륙이 원산지다. 리기다소나무, 방크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 같은 지역 수종은 저항성을 보이지만 동아시아의 소나무와 잣나무, 곰솔에는 치명적이다. 크기는 1mm 이하로 작다. 자체 이동 능력은 없다. 매개충에 달라붙어 빠르게 퍼진다.
매개충 한 마리에 선충 1만 5000마리가 붙을 수 있다. 감염 나무에서 암수 한 쌍이 20일 만에 20만 마리로 번식한다. 감염 초기에는 증상이 눈에 띄지 않지만, 잎이 갈색으로 변할 때는 이미 수개월 동안 수관이 막혀 치료가 불가능하다. 다른 소나무 질병에 걸리면 5~7년 걸려 고사하지만, 재선충에 감염되면 두세 달 만에 시들시들해지고 6개월 안에 대부분 고사한다.
한국에서 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 동물원에 수입된 일본원숭이 우리에 사용된 감염 목재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에는 잠잠했으나 21세기 들어 급격히 확산했다. IMF 사태로 행정력과 예산이 줄면서 감시가 느슨해졌고, 감염된 소나무가 땔감이나 이식용으로 수백 km 이동하며 전국으로 퍼졌다. 매개충의 자체 이동 거리는 수백 미터에서 최대 2km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한 이동이 주요 원인이다. 2008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제정으로 소나무 이동을 금지하고 방제를 강화했으나 피해는 계속됐다.
국내 피해는 74개 지자체에서 860만 그루에 이른다. 경남이 194만 그루로 가장 크고 제주도가 86만 그루로 뒤따른다. 강원, 수도권 등 전지역으로 퍼지기 직전이다. 제주도는 2012년 6월 처음 유입됐으나 급속히 확산됐다. 2014년 4월 피해 고사목은 218만 그루로 최대였으나 2015년 174만 그루, 2016년 137만 그루, 2017년 99만 그루로 줄었으나, 2020년 30만 8천 그루, 2021년 37만 8천 그루, 2022년 106만 6천 그루로 다시 폭증했다. 올해 5월까지 산림청 집계로 149만 그루가 감염됐다. 포항, 경주, 안동 등 영남권 6개 시군은 피해 극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포항 남구 동해면 발산리, 대동배리, 호미곶면 대보리, 장기면 신창리, 수성리, 두원리 등 포항 전역에 이렇게 무서운 재선충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이미 잎이 떨어지고 줄기와 가지가 잿빛으로 변한 나무가 많다.
경주시는 올해 24만 그루를 제거했다. 506ha에 예방주사를 놨다. 감포읍은 수종 전환을 결정하기도 했다. 포항 장기면 신창리 일출암 소나무도 지난해 감염돼 제거됐다. 경북 전역의 상황이 비슷하다. 울릉만 제외하고 도내 전역에 발생했다. 강원도에서는 춘천, 홍천, 횡성, 원주 등 영서 지역에 급속히 번졌고, 청정지역이었던 강릉에서도 감염목이 발견됐다. 올해 강원도 내 확인된 감염목은 1만 8000그루다. 지난해보다 5배나 증가했다.
일부 지역은 방제가 의미 없는 수준으로 재선충이 번졌다. 이 때문에 감염 나무를 방치하고 주변으로 더 번지지 않게 차단방역을 하고 있다.
KBS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양양고속도로 남춘천 나들목 인근의 야산에는 말라 죽은 회색빛 소나무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솔잎은 모두 떨어졌으며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최근엔 잣나무 감염도 심각해졌다.
소나무재선충 감염이 이렇게 극심해진 까닭은 뭘까. 기후변화다.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 생존율이 높아지고 활동 기간이 길어졌다. 일선 지자체는 소나무재선충병을 일으키는 매개충의 우화 시기가 갈수록 빨라져서 방제 시기를 10월에서 9월로 앞당겼다.
방역하기란 까다롭다. 솔수염하늘소가 바람을 타고 수 k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기 때문이다. 초기 고사목과 주변 소나무를 벌목해야 한다. 3, 4월에 고사목을 벌목해 파쇄, 소각, 훈증 처리한다. 소나무 반출과 이동도 제한한다. 감염목이 땔감이나 자재로 이동하면 재선충이 퍼지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동원하지만 한계가 있다.
천적을 활용한 방제가 연구되고 있다. 솔수염하늘소 천적엔 가시고치벌, 광릉왕맵시방아벌레가 있다. 이 중 가시고치벌 이용 방제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호르몬 트랩, 재선충 내성 소나무 품종 개발도 시도되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소나무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나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며 애국가 2절 가사에도 등장할 정도다. 그런 소나무가 이제 천형 같은 병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불에 잘 타는 특성상 산불로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소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활엽수를 심는다. 실제로 포항시는 20년째 소나무 대신 다른 나무를 심고 있다. 언젠가는 소나무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소나무 보존 문제를 두고선 전문가들마저 의견이 갈린다. 한쪽에서는 소나무가 한국의 상징이자 역사를 함께한 나무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산불에 강한 활엽수로 대체해 자연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