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에 수만원 했는데...한국서 가격 47% 폭락해 난리 난 '명품 과일' 정체
2025-09-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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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과일계 황제'로 각광받았던 과일
한때 '과일계 황제'로 각광받았던 과일의 가격이 절반 이하로 급락하면서 농가들이 비상에 걸렸다. 한국에서 몰락한 명품 과일이라는 굴욕을 안게 된 이 과일의 정체는 바로 샤인머스캣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송이에 수만원을 호가하며 고급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거봉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작년보다 21%, 평년보다 47% 급락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9일 기준 샤인머스캣 2kg 소매가격은 1만 8818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21.74% 하락한 수치다. 더 충격적인 것은 평년과 비교했을 때다. 평년 대비 무려 47.35% 낮은 가격으로, 2020년 평균 소매가격 4만 786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도매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에서의 샤인머스캣 도매가격은 2kg당 1만 1404원에 그쳤다. 같은 무게의 거봉이 1만 5993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29%나 저렴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10월 가격이 800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농가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시름 깊어지는 샤인머스캣 농가…"생산비도 못 건지는 상황"
실제 재배 농가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김희수 한국포도회 경북지부장은 "1송이당 생산비 1000원 이상 투입되는데 남는 건 2500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2020년만 해도 7000원까지 수익을 올렸으나 이제는 생산비 보전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가격 붕괴의 주된 원인은 공급 급증에 있다. 샤인머스캣은 초심자도 비교적 쉽게 기를 수 있고 보관이 용이해 단기간에 재배 농가가 폭증했다. 전체 포도 재배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그 급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4%에 불과했던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은 2020년 22%, 2022년 41%로 늘어났고, 작년에는 44%까지 증가했다. 이는 기존 주력 품종인 캠벨얼리(29%)와 거봉류(17%)를 크게 앞지르는 수치다.

몰락한 명품 과일...맛까지 떨어져 소비자 외면
문제는 물량 증가만이 아니다. 품질 하락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수확량을 늘리려는 농가들이 당도가 충분히 오르기 전에 조기 출하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단맛이 부족한 제품들이 시장에 범람하게 됐다.
농업 전문가들은 샤인머스캣이 제대로 된 당도를 확보하려면 한 가지에서 500~600g 정도의 송이를 키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많은 농가들이 수확량 극대화를 위해 800g 이상으로 키우다 보니 당도가 낮고 껍질이 질긴 상품들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샤인머스캣은 외관이 잘 변하지 않는 특성 덕에 기준 미달인 제품들이 시장에 유통됐고, 이는 자연히 소비자들의 실망과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실제 소비자 불만사항을 살펴보면 '당도가 예전만 못하다', '껍질이 질기다'는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경북도, 신품종 포도 개발로 돌파구 모색
전국 포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경북도는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경북은 포도 재배면적 8206㏊, 수출량 3726톤 등 전국에서 각 56%, 78%를 차지하는 '포도 주산지'이지만, 샤인머스캣이 도내 포도 재배 면적의 약 60%인 4829㏊, 수출량의 약 9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단일 품종에 치중해 있어 품종 다변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레드클라렛, 골드스위트, 글로리스타 등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신품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김 국장은 "신품종으로 수출시장을 공략 중이다. 2023년 첫 수출길에 오른 레드클라렛은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샤인머스캣, 일본산 고급 품종에서 대중 과일로
샤인머스캣은 1988년 일본 국립과수과학원에서 아키츠-21과 하쿠난 품종을 교배해 탄생한 청포도다. 2006년 일본에서 품종 등록이 이뤄졌고, 같은 해 한국에 처음 도입됐다. 2012년 일본의 지적재산권 미등록으로 로열티 없이 대량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됐다.
2016년부터 국내 시장에 본격 등장한 샤인머스캣은 2017년 명품 과일로 각광받으며 한 송이당 2~3만 원 이상에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대량 보급과 생산면적 확대로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현재는 공급 과잉으로 명품 이미지마저 퇴색한 상태다.
해외에서는 여전히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일본에서는 최고급 과일로 취급돼 한 송이에 100달러(약 13만 원)까지 거래되는 사례가 있으며, 홍콩과 대만에서도 한국산 샤인머스캣이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현지 재배가 확산되면서 저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포도계의 에르메스'로 불렸던 샤인머스캣의 몰락은 단순한 공급 과잉을 넘어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품종 다변화와 품질 향상을 통해 농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