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수갑 찬 자국인들 모습에 분노... 미국 투자 줄일 것”

2025-09-14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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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무차별적 단속 여파 한국에서 계속 반향”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한국인 근로자 대거 구금 사태와 관련해 미국이 해외 투자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다.

WSJ는 12일(현지시각) 사설을 통해 "지난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무차별적 단속의 여파가 한국에서 계속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WSJ는 "한국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이 구금 시설에 갇힐 수 있다면 미국에 새로운 투자를 하는 데 많이 주저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했다.

또 "시설을 건설하거나 공장에 장비를 설치할 때는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인력이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미국인들이 듣기 불편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미국에는 이런 일을 할 노동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WSJ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수출품에 더 높은 관세 부과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협조하려는 태도를 보였지만 이런 유연성은 결국 자국 유권자들의 인내심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대미투자를 약속했음에도 한국인 근로자들을 구금한 데다 단속 과정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수갑과 족쇄를 찬 상태로 연행되는 모습까지 공개되면서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단속 다음 날인 지난 5일 체포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실제로 구금에서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한 인천공항에서 미국에 투자했음에도 한국인이 구금된 것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WSJ는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것 같은 단속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고 말하는 해외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단속은 미국 역사상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이민 단속으로 기록됐다. 지난 5일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경찰이 합동으로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을 단속해 총 475명을 구금했다. 이 중 한국인이 31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인 3명, 중국인 10명, 인도네시아인 1명 등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구금된 한국인 중 47명은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었고, 나머지는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현대차는 자사 직접 고용 직원은 구금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구금된 한국인 대부분은 엔지니어나 기술자였으며, 이들은 공장 건설과 장비 설치를 위해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당국은 이들이 필요한 취업 허가 없이 미국에서 일했다며 구금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전자여행허가시스템(ESTA)이나 단기 비자로 입국했으나 실제로는 취업 활동을 했다는 것이 미국 당국의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즉각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며 구금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이 구금 시설에 갇힐 수 있다면 미국에 새로운 투자를 하는 데 많이 주저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또 "시설을 건설하거나 공장에 장비를 설치할 때는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인력이 없다"며 "한국 기업들에게 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이번 사태 이후 조지아주 투자 계획을 일시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향후 5년간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번 단속이 한미 관계와 외국인 투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국 당국은 뒤늦게 유화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인 근로자들이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사이의 모순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이민 단속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구금하는 상반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뿐만 아니라 블룸버그, MSNBC 등 주요 언론들도 이번 단속이 외국인 투자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사설과 칼럼을 잇달아 내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제조업 투자 유치와 강력한 이민 단속 사이의 모순을 지적하며, 이런 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공장도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한국 기업들은 미국 투자에 대해 더욱 신중한 접근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숙련된 한국인 기술자 없이는 공장 건설과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의 법적 지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이번 사태가 외국인 투자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 "법 집행과 외국인 투자 유치는 별개 문제"라고 답변하며 선을 그었지만, 실제로는 두 정책이 상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이민 통제를 추진하려는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는 외국인 전문 인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이민 정책과 산업 정책 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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