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드로 총리를 뽑다... 반정부 시위만큼 놀라웠던 네팔의 '디지털 혁명'
2025-09-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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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드로 바꾼 네팔의 운명... 중국 개입 변수 될까
게임과 채팅을 위한 앱 디스코드가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네팔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한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됐다. SNS 차단 조치로 시작된 젊은 세대의 분노가 정권을 무너뜨리고, 온라인 투표로 새 총리까지 뽑아낸 ‘네팔 혁명’의 전말을 14일 유튜브 채널 ‘센서스튜디오’에 올라온 영상 네팔 시위 결말은 대성공...중국의 개입 가능성?‘ 등을 참고해 들여다본다.
혼란으로 가득찬 네팔 상황이 이제는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 네팔 공산당 정권은 완전히 붕괴했고, 새로운 총리가 취임해 현 상황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이제 네팔 시위가 아닌 네팔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네팔 공산당 정부가 유튜브, 페이스북 등 26개의 SNS를 차단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의 실탄 발사로 사상자가 속출하며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결국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 전 총리는 사임 후 헬기로 도주했다.
혼란은 멈추지 않았고 국회, 대법원, 검찰청이 방화로 불타며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정치인 자택이 습격당했다. 전 총리의 부인이 화재로 사망했다. 교도소 습격으로 수감자 1만3500여명이 탈옥했다.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자 군부가 병력을 투입했다.
이 상황에서 정말 모두의 예측을 깬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사실 이번 시위는 구심점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네팔군이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네팔인들이 디스코드로 사태를 수습할 사람을 뽑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단체 하미 네팔이 개설한 청년 반부패 서버는 단 4일 만에 회원수가 14만5000명을 넘어섰으며, 여기에서 네팔의 젊은 시위대가 실시간으로 정치 토론과 의사결정을 진행했다.
이 디스코드 서버는 사실상의 디지털 국회 역할을 했다. 토론 내용은 네팔의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중계되기도 했다. 워낙 영향력이 크다 보니 네팔 육군 참무총장과 대통령이 디스코드 운영진과도 접촉할 정도였다.
결국 디스코드 서버를 통해서 네팔 임시 총리를 선출하기에 이른다. 디스코드 내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한 결과 7713명이 참여해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로 선출됐다.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네팔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정부 부패 척결의 강경한 태도를 보인 인물이었다. 물론 네팔의 인구가 3000만 명 가까이 되고 이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7713명밖에 없어서 대표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네팔 대통령실은 이를 인정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한 국가의 대표를 뽑은 것은 역사상 최초다. 네팔의 이번 사태는 디지털 기술과 젊은 세대의 사회 참여가 정치적 변화에 새로운 경로가 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73세인 카르키 임시 총리는 짧은 취임식을 거쳐 취임했고, 네팔 대통령실과 군부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임시 정부를 이끌 예정이다. 카르키 임시 총리는 고강도 사태 수습에 나섰다. 우선 문제가 많았던 네팔 하원을 해산했고, 8개 정당의 동의를 받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리고 네팔 원 선거는 내년 3월 5일 실시된다. 총 275명의 하원 의원을 새로 선출한다.
네팔 사태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군부다. 혼란의 와중에도 군부는 권력을 탐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겼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국가가 대규모 시위로 무너지고 권력 공백이 발생했을 때 군부가 개입해 정권을 장악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네팔 군부는 달랐다. 무너진 정부의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눈앞에 있었음에도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 지도부는 상황을 안정하는 데만 집중했다. 시위대가 국회를 불태우고 장관들이 거리에서 공격당하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군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방패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군의 개입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시위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군용차와 장비로 질서를 지키고 혼란을 진정시키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번 시위가 끝내 거대한 전환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만약 군부가 조금이라도 권력을 탐했다면 시위대는 더 극렬하게 분노했을 것이고, 네팔은 내전이나 군정 체제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군부가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정치가 아닌 보안과 질서 유지에 국한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체제 전복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네팔군이 보여준 절제와 균형 감각은 국가가 극한의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카르키 임시 정부가 들어선 뒤 네팔군은 다시 기지로 복귀했다. 통행 금지와 제한 조치도 모두 해제했다. 카르키 임시 정부와 네팔군의 노력으로 네팔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었고, 거리는 차량들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네팔 시민들은 성숙했다. 시위대는 빗자루나 쓰레기통을 들고 나와서 자신들이 어지럽힌 도시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인트 도구를 들고 와서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일부 시위대는 약탈했던 전자 제품을 다시 돌려주는 모습도 보여줬다. 덕분에 카트만두를 포함한 네팔 도시들이 안정을 찾고 있다.
당연하게도 주변국들은 네팔의 안정을 환영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카르키 임시 총리 임명 직후 SNS를 통해 카르키 총리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인도는 네팔 형제 자매들의 평화와 발전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사태가 못마땅한 나라도 있었다. 그중 가장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곳은 단연 중국이다. 이번 사태가 자국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네팔 정부는 점차 친중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당이었던 네팔 공산당과 네팔 회의당이 주도하는 좌파 연립 정부는 줄곧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반정부 시위 며칠 전까지 양국은 합동 군사 훈련을 진행하며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이를 통해 인도와의 경쟁 구도 속에서 네팔을 전략적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사실상 네팔을 안정적인 파트너로 구축해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무너지고 민중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지금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청년 친구 학생 세력은 대체로 중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은 네팔 정권이 중국과 지나치게 밀착하면서 자국의 주권과 독립성이 훼손됐다고 느껴왔다. 따라서 중국과 연결된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반중 정서로 확산하고 있다.
국회 의사당이 불타고 장관들이 군중에게 공격당하는 장면 속에는 단순한 반정부 정서를 넘어 중국과 긴밀히 얽혀 있던 정치 세력에 대한 분노가 투영돼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관점에서 반가울 수 없는 흐름이다.
중국은 그간 네팔을 일대일로 구상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겨왔고, 국경 지역의 군사적, 경제적 통제권 확보를 위해서도 네팔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했다. 민중의 분노가 반중 정서와 맞물려 커진다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외교적 자산이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단순히 우려를 표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중재자 역할을 자처할 수도 있고, 경제적 지원을 빌미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려 할 수도 있다. 네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국은 불안정한 국경을 관리해야 하는 압박까지 떠안게 된다.
히말라야 국경지대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은 네팔의 혼란을 결코 방관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번 시위는 단지 네팔 내부의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인접 강대국인 중국에도 직접적인 이해와 손실을 안겨주는 민감한 사안으로 번져가고 있다.
카르키 임시 총리의 취임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네팔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도 선거를 통한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현재 내년 3월로 예정된 총선까지는 6개월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기간 임시 총리는 부패 청산과 선거 제도 개혁, 그리고 사회 갈등 봉합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기존 정당들이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만큼 디스코드를 중심으로 등장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얼마나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전개의 변수로 꼽힌다. 만약 기존 정치권이 다시 세를 회복한다면 이번 혁명이 단순한 일시적 폭발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경제 문제 역시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최근 혼란으로 네팔의 관광과 무역, 투자 환경은 큰 타격을 입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외국인 자본은 불안을 이유로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미 물가 상승과 실업 증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임시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민심은 빠르게 식을 수 있고, 혁명의 성과 역시 퇴색할 우려가 있다.
대외 관계 또한 불안 요소다. 인도는 네팔을 형제 국가라고 부르며 지지를 표했지만, 지나친 인도 의존은 또 다른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사태를 불편하게 지켜보는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네팔 민주주의 회복을 지지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네팔로선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어떻게 펼칠지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팔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참여다. 디스코드 국회를 통해 보여준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와 성숙한 시민 의식은 이미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열정이 실제 제도 정치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번 혁명은 한때의 실험으로만 기록될 수 있다.
결국 네팔의 미래는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실험을 제도적 틀 속에 정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란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정치 실험을 이어갈까. 아니면 전통적 정치 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잡고 과거로 회귀할까. 네팔은 갈림길에 서 있다. 세계가 네팔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