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완전 망한 줄 알았는데…기적적으로 출하되고 있다는 '국민 식재료'
2025-09-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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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가 위협하는 한국 농업
여러 어려움 끝에 기적적으로 출하되고 있다는 국민 식재료가 있다.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일대 고랭지 배추밭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창 자라난 배추를 수확해 트럭에 실어내는 모습은 평년과 다르지 않았지만, 밭 주인 표정에는 안도와 동시에 깊은 피로가 묻어났다. 그는 "작황은 좋지 않지만 값은 그나마 나쁘지 않다"고 짧게 말했다. 올해 내내 이어진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생산량이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출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는 국민 식재료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한국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채소다. 김장철을 비롯해 사시사철 각종 국물요리와 반찬에 쓰이면서도 가격 변동에 따라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배추의 작황과 가격은 매년 가을마다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올해 강원 평창군, 태백시 등 주요 고랭지 배추 재배 단지들은 유례없는 악조건에 직면했다. 폭염과 비 부족이 겹치면서 석회결핍으로 인한 ‘꿀통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꿀통현상은 배추가 속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속이 빈 채로 자라는 생리장해 현상으로, 상품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올해 꿀통현상 발병률은 무려 70%에 달했다. 이는 평년 35%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여기에 반쪽 시들음병, 검은썩음병, 씨스트선충 등 주요 병해충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지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포전별 출하 비율이 0%에서 70%까지 극심한 편차를 보이며, 일부 농가는 사실상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농민들의‘포기 출하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확해도 운송비와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 밭에서 그대로 갈아엎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농가는 출하율 0%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기적 같은 출하가 이어지고 있다. 평창 대관령 일대에서는 여전히 수확이 가능한 밭이 존재하며, 시장에도 일정량의 배추가 공급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농민들의 근성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전반적인 생산량 감소로 배추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출하 가능한 물량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전체 수확량은 줄었으나 남아 있는 배추의 단가는 올라 일정 부분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올해 고랭지 배추 사태는 단순히 한 해의 기상 악조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상기후로 인한 반복적인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병해충의 만성화는 해마다 농업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배추처럼 전국적 소비가 집중되는 작물의 경우, 한 해의 실패가 곧바로 물가 불안으로 이어지기에 더욱 민감하다.
농가에서는 병해충에 대한 연구와 방제 기술, 기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재배법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는 산지 폐기와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한 생산·유통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배추 가격이 오르면 김장철을 앞두고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출하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다행스럽지만, 그 이면에는 농민들의 눈물과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한다.
배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한국인 밥상과 직결된 생활 필수품이다. 올해의 위기를 계기로 농업 현장의 불안정성과 기후 위기의 현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난 만큼, 안정적 생산과 유통 체계 구축을 위한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