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도 삼키지 못했다… 기적처럼 살아남아 돌아오는 ‘국내 관광지’
2025-10-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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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에서도 지켜낸 정자, 9월 25일 시민 품으로
불길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안동 만휴정이 시민 곁으로 돌아온다.

안동시는 대형 산불로 주변 원림이 전소된 만휴정 일대의 정비공사를 마치고 지난 달 25일 공식 개방한다고 밝혔다.
운영은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이뤄지며 관람은 유료로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현장을 찾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된다.
만휴정은 지난 3월 발생한 산불로 주변 원림 4.23ha가 모두 불에 탔지만 정자 본채는 화마 속에서도 보존돼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후 안동시는 6개월 동안 탐방로 정비와 고사목 제거, 안전시설 보강 등을 마쳤으며 훼손된 원림 복원은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시는 만휴정 개방을 계기로 안동포타운, 금소마을, 묵계서원 등 인근 명소와 연계한 관광 활성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가을 여행철을 맞아 지역 방문객 증가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이번 개방은 문화유산 관람을 넘어 산불 피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만휴정의 감동을 국민과 나누는 자리”라며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질서 있는 관람에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계행이 말년에 머물며 독서와 사색을 즐겼던 곳이다.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그의 삶이 담긴 정자지만, 요즘 세대에게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더 친숙하다. 극 중 유진과 애신이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라는 명대사를 나눈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찍혔다.
정자는 크지 않지만, 숲속 외나무다리와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 폭포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만든다. 잔잔하면서도 장쾌한 풍광 덕에 실제로 마주하면 화면 속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주말이면 ‘인생샷’을 남기려는 여행객들로 붐비지만, 평일 오전을 찾으면 한적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후기가 많다.
사계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매력이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계곡 밑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청량하고, 봄이면 벚꽃과 살구꽃이 만개해 정자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붉은 단풍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만휴정을 찾은 이들은 흔히 “작지만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는 감상을 남긴다. 여행 코스는 인근 안동 구시장의 찜닭골목이나 떡볶이 골목, 그리고 맘모스베이커리까지 이어가면 더욱 알차다. 문화유산의 고즈넉함과 지역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안동 여행의 색채가 한층 짙어진다.
◈ 만휴정과 함께 즐기는 안동의 또 다른 매력
안동을 찾는다면 만휴정만 둘러보고 떠나기 아쉽다. 대표적인 곳은 풍천면에 자리한 하회마을이다. 낙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가 알파벳 ‘S’처럼 마을을 감싸 안아 이름이 붙었고, 풍산 류씨 집안이 600년 넘게 터전을 지켜온 덕분에 조선시대 건축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앤드루 왕자가 각각 1999년과 2019년에 찾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은 고즈넉한 전통 가옥뿐 아니라 낙동강 풍광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강가에는 소나무 만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선 만송정 숲이 자리하고, 맞은편에는 기암절벽 부용대가 우뚝 서 있다. 특히 이 일대는 안동의 전통 연희인 하회선유줄불놀이가 열리는 무대다.

줄불놀이는 양반들의 뱃놀이와 불빛이 어우러진 독특한 공연으로 부용대에서 강 건너 만송정 숲까지 230m 길이의 줄을 걸고 숯가루 봉지를 매단 뒤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불꽃비를 쏟아낸다. 여기에 달걀껍질에 기름을 담아 띄운 ‘달걀불’, 부용대 정상에서 떨어지는 ‘낙화’까지 더해져 밤하늘과 강물이 동시에 빛나는 장관이 펼쳐진다.
최근에는 드라마 악귀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올해 줄불놀이는 9월 30일을 시작으로 10월 20일, 10월 27일, 11월 4일, 11월 25일, 12월 9일에 개최된다. 올해부터는 사전예약제로 운영돼 ‘경북봐야지’ 누리집이나 모바일 앱에서 신청해야 하며, 관람료는 1인당 1만 원이다. 24개월 이하 영유아는 무료다.
안동의 깊어가는 가을은 만휴정의 고즈넉함과 하회마을의 전통, 줄불놀이의 화려한 불빛으로 완성된다. 산불의 상처를 딛고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온 만휴정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을 엮은 여행은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