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는 모른다... 추어탕을 미꾸라지로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대반전'
2025-10-0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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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와 헷갈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한국 물고기'

진흙 속에서 꼬물거리는 장어처럼 생긴 작은 물고기. 사람들은 대부분 이 물고기를 미꾸라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체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가 흔히 미꾸라지라고 알고 있는 물고기가 실제로는 미꾸리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종이 다르다. 하지만 둘을 같은 물고기로 알고 있거나 아예 미꾸리라는 이름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토종 어류인 미꾸리가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장 확실한 구분법은 수염의 길이를 보는 것이다. 미꾸리는 수염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눈 지름의 2.5배를 넘지 않는다. 반대로 미꾸라지는 수염이 길어서 눈 지름의 3~4배에 달한다. 몸 모양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미꾸리는 몸이 둥글고 통통해서 '동글이'나 ‘둥글이’로로, 미꾸라지는 몸이 납작해서 '납작이'나 ‘넙죽이’로 불린다.
미꾸리의 학명은 영어로 'oriental weatherfish', 즉 '동양의 기상어'다. 비가 오기 전 활발하게 움직이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꾸리과 미꾸리속에 속하는 민물고기인 미꾸리는 입 주변에 5쌍의 수염을 갖고 있다.
미꾸리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호흡 방식이다. 다른 물고기처럼 아가미로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장에서도 호흡한다. 공기를 삼켜서 장으로 보낸 다음 그곳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는 항문으로 배출한다. 실제로 미꾸리라는 이름도 '밑으로 방귀를 뀌는 물고기'라는 뜻의 '밑구리'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꾸리는 주로 논이나 연못, 늪 같은 정체된 물에서 서식한다.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견딜 수 있어 다른 물고기가 살기 어려운 곳에서도 생존한다. 4월부터 7월까지가 산란기다. 보통 16~17cm 정도까지 자란다. 잡식성으로 물속의 작은 곤충, 벌레, 식물 등을 먹고 산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미꾸리는 중국, 대만, 일본, 사할린에도 서식한다. 특히 일본에는 미꾸라지가 살지 않고 미꾸리만 분포한다. 일본어로는 '도조'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미꾸리를 잡는 모습을 본뜬 전통춤 '도조스쿠이'도 있을 정도로 친숙한 물고기다.
한국에서 미꾸리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급속한 도시화와 농업 환경 변화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수입산 미꾸라지가 대량 유통되면서 토종 미꾸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미꾸리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7년 서울시는 여의도 샛강에 미꾸리 1만 마리를 방류해 모기 유충을 잡아먹게 하는 친환경 방역 사업을 시도했다. 2021년에는 경기도가 도내 13개 하천에 미꾸리 치어 5만 마리를 방류했다. 미꾸리가 하루에 장구벌레를 1000마리씩 먹어치워 모기 개체수 감소와 수질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교익에 따르면 우리 땅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함께 살았다. 한 개울에서 잡아도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섞여 나왔으나 미꾸리가 더 많이 잡혔다.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생명력이 강해 생태적 우종으로 번성했기 때문.
하지만 성체로 키우는 데까지 미꾸라지는 1년, 미꾸리는 2년을 넘겨야 하는 까닭에 양식업체가 미꾸라지를 선호하게 됐다. 황교익은 추어탕 맛이 예전과 다르다고 불평이 나오는 이유가 재료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1.5~2배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둘 다 추어라고 부르지만 미꾸리 맛이 더 좋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어탕으로 유명한 전북 남원에도 미꾸리를 재료로 쓰는 집이 많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이런 구분을 모른 채 모두 '미꾸라지'라고 부르고 있다.
논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던 미꾸리가 사라지면서 우리 농촌의 생물 다양성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이 물고기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