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 자주 보이던데…제거의 날까지 생긴 ‘생태계 교란 식물’ 정체
2025-09-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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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가 매년 벌이는 끝없는 퇴치전
한 번 자리 잡으면 뽑아도, 베어도 다시 자라는 생태계 교란 식물이 있다.

도심 산책로 옆 울타리를 휘감은 덩굴, 하천변 나무에 빼곡히 매달린 초록 잎사귀는 언뜻 보면 자연의 풍경처럼 보인다. 때로는 “식물의 생명력은 놀랍다”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체를 알고 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번식력을 무기로 토종 식물을 질식시키고, 사람에게 상처와 알레르기까지 일으키는 ‘가시박’이다.
가시박은 한눈에 보기엔 평범한 덩굴식물 같지만, 실제로는 생태계를 뒤흔드는 무서운 교란종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이 식물은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다. 당시에는 오이 같은 덩굴성 채소를 재배할 때 접붙이기 대목(臺木)으로 활용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경작지 밖으로 빠져나간 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며 우리 하천과 들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번식력과 확산력이 워낙 강해 현재는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줄기와 잎자루, 열매에 돋아 있는 날카로운 가시는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를 입히고 거친 털과 꽃가루는 알레르기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이 식물이 무서운 이유는 엄청난 번식력이다. 한해살이 덩굴식물이지만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한 포기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씨앗을 퍼뜨려 순식간에 주변을 점령한다. 떨어진 씨앗은 다음 해에 쉽게 발아하고, 강물이나 바람, 동물의 털에 묻어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 군락을 형성한다. 그 결과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뽑아내도, 베어내도, 불과 몇 달 안에 같은 자리를 다시 뒤덮는다.

피해는 단순히 식물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시박이 번져나간 하천변에서는 토종 식물들이 햇빛을 받지 못해 말라죽고 수십 년간 유지돼온 식생 구조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나무를 감아올라 줄기를 질식시키고 풀밭을 덮어 다른 식물들의 생장을 방해한다. 이런 변화는 곧바로 곤충, 새, 물고기 등 연쇄적인 생물 다양성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특정 지역이 하나의 교란 식물로 덮이면서 토종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이다.
농업에도 타격을 준다. 농수로를 따라 번져나간 가시박은 논밭까지 침입해 작물 생장을 방해하고,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수확량이 줄어드는 피해로 이어진다. 제거를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역시 농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지자체와 환경 당국은 매년 대대적인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번 달 중순부터 합천군 덕곡면에서 부산 사하구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수변 120km 구간에서 가시박과 단풍잎돼지풀 제거 작업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춘천시도 ‘가시박 제거의 날’을 지정해 민·관·군이 합동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연천군, 제주시, 서울 한강공원 등도 가시박 제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뽑아도 또 자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확산은 반복된다. 씨앗이 물길을 타고 이동하거나 동물에 의해 쉽게 옮겨지는 데다 워낙 강한 생명력을 지닌 탓에 일시적인 제거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시박은 단순한 외래 식물이 아니라 생태계, 농업, 주민 건강까지 위협하는 ‘괴물 덩굴’로 불린다. 결국 해결책은 단발성 제거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관리와 시민들의 참여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가 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가시박의 끈질긴 생명력과 확산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