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연속 3일 한 직원 사망…법원이 '회사 책임' 인정한 이유
2025-09-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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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된 음주의 위험성, 법원이 주목한 포인트
3일 연속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과음한 뒤 숨진 근로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단순한 사적 음주가 아니라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회식이었다는 점, 그리고 연속된 음주의 누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최근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고 인정하며, 공단의 지급 거부 처분을 취소했다.

A씨는 2022년 7월 초 회사의 해외 영업 관리 업무를 수행하던 중 자택 주차장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급성 알코올 중독이었다. 이에 유족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과음이 누적돼 사망에 이르렀다”며 산재 인정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거절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망 전 이어진 회식의 성격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기록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3일 연속 저녁 회식에 참석했다.
첫날 회식은 해외 거래처 관계자를 접대하기 위한 공식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1인당 와인 2~3잔 정도를 나눠 마셨고 비용은 회사 경비로 처리됐다.
둘째 날에는 회사 임원이 주관해 해외 법인 주재원과 본사 직원 등 36명이 모였다. 직원 격려와 친목을 목적으로 한 이 자리에선 소주 34병, 맥주 46병이 소비됐고, 역시 회사 경비가 사용됐다.
셋째 날 회식은 A씨와 직원 2명이 현지 채용인 2명을 초대한 자리였다. 참석자는 5명에 불과했지만, 소주와 맥주 외에도 위스키 2~3병까지 곁들여 상당한 양의 술이 오갔다. 식사 비용은 A씨 측 직원들이 분담했고, 현지 직원이 술값을 결제했다.

의료진은 사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음주는 마지막 날 회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세 번째 회식의 비용을 일부 사적으로 부담했다고 해서 업무 관련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A씨가 담당하던 업무 특성상 현지 직원들과 긴밀한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었고, 당시 장기 출장 예정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사실상 업무 연장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술을 권하는 분위기에서 A씨가 회식 자리에서 음주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현지 직원들의 직급이 A씨와 동등하거나 더 높은 경우가 있어, 술자리를 단순히 사적 교류로만 해석하기 힘들다는 판단도 내렸다.
이와 함께 법원은 연속 음주의 누적 효과를 인정했다.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앞선 회식에서 섭취한 술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이어 음주가 이어지면 혈중 알코올 농도는 누적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재판부는 “앞선 두 차례 회식의 음주가 사망 원인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원은 3일간의 회식이 모두 업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로 인한 음주가 A씨의 사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업무 관련 회식에서 발생한 과음이 누적돼 사망에 이른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회사 경비로 이뤄진 회식이나 업무 연장선상에 있는 모임은 단순한 사적 모임과는 구분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회식 문화가 여전히 업무의 연속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