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만성콩팥병 33.7% 급증... 한국 신장 건강, 진짜 위기다
2025-09-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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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건강, 방치하면 치명적인 결과
침묵의 살인자, 만성콩팥병의 위험성
신장 질환은 이제 단순한 합병증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망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장병이 전 세계 사망 원인 중 9위를 차지한다며, 이를 독립적인 주요 질환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 5월 제78차 세계보건총회(WHA78)에서 ‘신장 건강 결의안’을 채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WHO가 비감염성 질환 가운데 신장 질환을 우선 과제로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WHO가 중앙일보에 보낸 답변서에 따르면 2021년 국제질병부담연구에서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7400만 명이 만성콩팥병을 앓는 것으로 추정됐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고혈압, 당뇨병의 확산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신부전 단계에 이르면 투석이나 신장이식 같은 대체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들어가는 의료비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더라도 막대하다. WHO는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이러한 비용 부담이 가계 파탄이나 조기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결의안 채택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도 상황이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에 따르면 만성콩팥병 환자는 2020년 25만 9116명에서 지난해 34만 6518명으로 3년 새 33.7% 증가했다.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 또한 같은 기간 7만 4638명에서 8만 8363명으로 늘었다. 환자 수 증가와 함께 성별 격차도 나타나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1.6배가량 많다. 병을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말기 단계로 악화돼 결국 투석이나 이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한신장학회 자료를 보면 말기신부전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62%로, 주요 암 환자의 평균 생존율인 72.9%보다 낮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 말기신부전 환자는 인구 100만 명당 매년 19.4명씩 증가해 헝가리와 태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당뇨병으로 인한 말기신부전 환자는 인구 100만 명당 매년 10명씩 늘어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만성콩팥병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연세대 의대 박형천 교수는 “만성콩팥병 환자 가운데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며 “식욕이 떨어지거나 구역질, 구토, 부종, 거품뇨 같은 증상이 나타나 병을 알게 되지만, 이때는 이미 신장 기능이 크게 손상된 뒤”라고 경고한다. 결국 환자는 투석이나 이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 유명 인사들도 이 질환을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의 팝스타 티나 터너는 고혈압을 가볍게 여기다 뇌졸중을 겪은 뒤 신장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됐다. 그는 투석 치료를 받고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결국 2023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당뇨병으로 인한 만성콩팥병을 오랫동안 앓다가 2009년 서거했다.
전문가들은 조기 발견과 꾸준한 관리가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강조한다. 대한신장학회 이동형 이사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사구체여과율(GFR) 지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질환을 예방하거나 조기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수치가 90 이상이면 정상, 60~89는 기능이 일부 저하된 상태, 30~59는 만성콩팥병으로 분류된다. 60 미만일 경우 반드시 신장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하며, 단백뇨가 확인되면 염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
박형천 교수는 환자 관리 시스템의 필요성도 지적한다. 그는 “만성콩팥병은 조기 진단과 적극적 관리가 필수적이므로 환자를 등록해 체계적으로 추적 관리할 수 있는 ‘만성신장병관리법(가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WHO 역시 각국이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보건 체계 강화와 지속가능한 재정 확보, 약가의 공정성 보장, 지역사회 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치료 옵션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성콩팥병은 한 번 손상된 신장 기능을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철저히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WHO가 전 세계적으로 경고음을 울린 만큼, 우리 사회 역시 신장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정책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