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대신 한반도 점령했었는데…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동물'

2025-09-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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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지대 배회하던 공포의 포식자

한반도 숲과 들을 호령하던 맹수는 호랑이만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시기, 호랑이가 급격히 줄어들자 그 빈자리를 차지한 동물이 있었으니 바로 '늑대'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호랑이의 공백을 메우며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늑대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지를 살펴보면 한국 자연사와 인위적 환경 변화가 맞물린 과정을 읽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자취 감춘 늑대.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한반도에서 자취 감춘 늑대.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최근 EBS 다큐 유튜브 채널에는 한반도에서 흔적을 감춘 늑대에 대한 영상이 올라와 관심을 모았다.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늑대는 사실 원래도 흔한 동물이 아니었다. 농경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가축이 많지 않아 늑대의 주요 먹잇감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호랑이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늑대를 적극적으로 배제했다. 호랑이는 늑대를 직접 공격하거나 서식지를 밀어내며 생태적 압력을 가했다. 이 때문에 늑대는 조선 시대 기록 속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신식 총기가 도입되고 관청과 민간의 집중 포획이 이어지면서 호랑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 공백을 틈타 그동안 숨어 지내던 늑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문헌과 신문 기사에는 늑대 출현과 피해에 관한 기록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포획 사례도 늘어났고 농민들의 피해 사례는 신문 지면을 채웠다.

특히 한국에서 늑대 피해는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가축 피해가 많았지만 한반도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피해 사례가 집중적으로 기록됐다. 영주와 봉화 등 산악 지역에서는 아동 실종 사건이나 피해담이 반복적으로 전해졌다. 늑대가 아이를 공격해 생긴 참혹한 사건은 민간에 큰 공포로 다가왔다.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포유류 늑대. / 국립생물자원관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포유류 늑대. / 국립생물자원관

늑대 피해가 빈번해지자 이에 대응하는 금기와 민간 지혜도 공유됐다. 피해 아동의 시신을 수습할 때 닭이나 개를 두고 자리를 떠야 늑대가 그 자리에 다시 들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졌다.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늑대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 늑대는 단순히 공포의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 민속적 대응을 낳은 존재였다.

늑대가 마지막까지 버틴 곳은 경북 북부 소백산맥 일대였다. 문경새재에서 조령산, 주월산, 황정산, 우락산으로 이어지는 깊은 산맥 능선과 골짜기는 인적이 드물어 은신처로 적합했다. 실제로 1963년 영주 상망동에서는 새끼 늑대가 포획되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강아지로 오인해 장터에 내놓았지만 사육 과정에서 꼬리를 거의 흔들지 않는 습성과 사냥 본능이 드러나 늑대임이 밝혀졌다. 이후에도 몇 차례 포획 기록이 이어졌지만 1970년대 들어 목격 사례는 급감했다.

늑대 개체군이 완전히 무너진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해수 구제 사업은 늑대를 체계적으로 몰아냈다. 밀렵과 독극물 살포는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고 도로 개설과 차량 증가로 서식지가 단절되면서 교통사고 피해까지 이어졌다. 작은 고립 집단이었던 만큼 유전적 취약성도 극복하기 어려웠다. 결국 1997년 6월 11일, 서울대공원에서 ‘영주 늑대’의 후손이 폐사하면서 한국 늑대는 사실상 멸종했다.

한반도에서 자취 감춘 늑대.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한반도에서 자취 감춘 늑대.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오늘날 남은 것은 몇몇 늑대 박제 표본과 지역 주민들의 기억뿐이다. 일부 조악한 박제 표본에는 ‘영주 늑대’라는 라벨이 붙어 있어 한때 이 땅에 늑대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증언에 따르면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과 늑대의 조우는 드물지 않았다. 이는 늑대가 단순한 신화나 전설이 아닌 실제 생활 속에서 마주했던 동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늑대의 역사적 전개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근대에서 근대 초까지는 호랑이가 우점하던 시기로 늑대는 주변부에서 간신히 생존했다. 19세기 말 신식 무기 확산으로 호랑이가 급감하자 늑대 출현이 증가하고 피해 기사들이 쏟아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에서 피해와 포획 기록이 늘었고 아동 피해담이 다수 채록됐다. 1950~60년대에는 경북 북부 소백산맥 일대에서 고립 개체군이 유지됐고 1963년 영주에서는 새끼 늑대 포획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밀렵과 도로 개설로 목격 사례가 급감했고, 1997년 서울대공원에서 영주 늑대의 후손이 폐사하면서 종적이 사라졌다.

새끼 늑대들.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새끼 늑대들.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늑대가 사라진 이유를 요약하면 최상위 경쟁자가 사라진 뒤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인간과의 충돌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국가적 구제 정책과 포획 장려, 독극물과 올가미, 총기 등 비선별적 압박, 도로 개설과 차량 증가로 인한 서식지 단절과 교통사고, 소규모 고립 집단의 유전적 취약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늑대는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포유류다. 개와 달리 꼬리를 거의 흔들지 않고 다리는 길고 굵으며 머리는 넓고 코는 뾰족하게 길다. 귀는 항상 빳빳하게 서 있고 밑으로 늘어지지 않는다. 서식 환경에 따라 털의 색과 밀도가 달라지며, 깊은 산림보다는 개활지를 선호한다. 한 번에 다섯에서 열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국 북부와 중부에도 과거 분포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멸종한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는 중국과 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한때 호랑이 빈자리를 메우며 한반도 숲을 장악했던 늑대는 이제 전설처럼 남았다. 그 자취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 한국 늑대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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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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