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코앞인데 '초비상'…값어치 폭락해 완전 난리 난 '국민 식재료'

2025-09-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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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곳곳 수확 포기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로 불리는 이곳은 추석 연휴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있음에도 아직 수확하지 않은 배추밭이 쉽게 눈에 띄었다. 정상적이라면 지금쯤 밭마다 수확 인부들이 분주해야 하지만, 올해 풍경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 푸르른 배추밭은 멀쩡해 보였으나, 속을 들여다본 농민들 표정은 어두웠다.

안반데기 배추 출하 작업 과거 자료사진. / 뉴스1
안반데기 배추 출하 작업 과거 자료사진. / 뉴스1

지난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현장의 농민 김모(65) 씨는 큼지막한 배추를 가리키며 "겉은 괜찮아 보여도 속은 다 썩었다"고 말했다. 기자 앞에서 배춧속을 갈라 보이자, 배추 중심부는 이미 물러내려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농민들은 이를 '꿀통배추'라 불렀다. 겉은 정상처럼 보이나 속이 녹아 상품성을 잃은 배추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김 씨는 "열 포기 중 아홉은 그냥 버려야 한다"며 "출하를 아예 포기하는 농가도 많다"고 토로했다.

폭염과 가뭄이 만든 '꿀통배추'

배추는 저온성 작물로 여름철 고온에 매우 취약하다. 올해 강릉과 태백 등 강원 고랭지 전역은 평년 대비 절반도 안 되는 강수량에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높게 나타났고, 기록적 폭염이 겹쳤다. 이 과정에서 배추 속 수분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내부가 무르는 현상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이른바 꿀통배추 사태다.

여기에 무름병, 반쪽시들음병 같은 토양 병원균 피해와 씨스트선충 감염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다. 일부 배추밭은 30% 이상이 상품성을 상실했고, 심한 곳은 10포기 중 9포기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다 상해버린 배추.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다 상해버린 배추.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김 씨는 "외국인 노동자 일당이 15만원인데, 제대로 건질 배추가 없어도 밭을 갈아엎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다"며 "본전조차 맞추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농민들 "올해 농사는 포기"…보상 촉구

강릉 지역 농민들은 차라리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는 체념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봉래 강릉시농민회 회장은 최근 시청을 찾아 "작물이 말라 죽는 상황에서도 농업용수를 요구할 수 없었던 농민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며 정부 차원 대책을 요구했다. 그는 "단순한 피해 보상이 아니라 농사 포기에 상응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강릉시는 지난 8일부터 가뭄 재난으로 인한 농가 피해 접수를 시작했다. 접수된 피해는 현장 검증을 거쳐 최종 규모가 확정되며, 정부 승인이 완료되면 일정 부분 보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피해 접수 대상에는 배추뿐 아니라 고랭지 무도 포함돼 있다.

추석 앞두고 공급 차질 불가피

정상 상태의 안반데기 배추. / 뉴스1
정상 상태의 안반데기 배추. / 뉴스1

추석은 배추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다. 김장철만큼은 아니지만, 제수용과 각종 음식 재료로 배추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강릉 안반데기를 비롯한 고랭지 배추 대규모 피해로 인해 시장 공급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올해 강릉 여름배추는 꿀통배추 속출과 병해충 피해로 인해 출하량이 급감했다. 일부 농민은 수확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했고, 그 결과 전국 도매시장에서도 배추 물량이 불안정하게 형성되고 있다. 출하량 감소에도 품질 불량이 겹쳐 거래되는 물량의 값어치는 크게 떨어졌다.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상품성을 잃은 배추는 시장에서 값도 못 치르고, 폐기 처리 비용까지 농가가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가뭄과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해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욱 크다.

안반데기 배추 자료사진. / 뉴스1
안반데기 배추 자료사진. / 뉴스1

원인과 과제는?

올해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가 낳은 가뭄과 폭염이다. 배추는 특히 온도와 수분 조건에 민감한 작물이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분 증발량이 늘어나 뿌리 활착이 어려워지고, 내부 수분 온도가 상승하면서 부패가 촉진된다. 올해처럼 평년보다 극심한 기상 조건이 반복된다면, 고랭지 배추의 안정적 수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단순 보상책을 넘어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고랭지 농업의 물 공급 체계 보강,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 병해충 관리 강화 등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농민들이 입은 타격은 단순히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추석 밥상과 전국 농산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당장의 피해 보상뿐 아니라,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에 대비한 체계적 농업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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