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센 머리, 수척해진 모습... 윤 전 대통령 재판서 무슨 일 있었나
2025-09-2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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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대통령 측, 특검기소 첫 공판에서 혐의 모두 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12시 24분까지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 사건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남색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센 상태였고 얼굴은 이전보다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수용번호 '3617'이 적힌 배지를 찼다.
구치소에서 법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갑과 포승줄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는 모두 푼 상태였다. 윤 전 대통령은 천천히 움직이며 피고인석 둘째 줄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주로 앉았던 곳이자 재판부가 앉는 법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다.
재판부가 인정신문에서 생년월일과 주소를 묻자 "1960년 12월 8일, 아크로비스타 ○○호"라고 답했다.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국민참여재판은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진 모두진술에서 박억수 특검보가 "첫 공판기일이고, 재판부와 국민들에게 공소사실의 취지를 소상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공소사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특검팀은 추가 기소한 5가지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 9명의 헌법상 권한인 계엄 심의·의결권을 침해한 혐의, 계엄선포문을 사후에 허위로 만들고 이후 폐기한 혐의를 받는다. 우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허위 사실이 담긴 공보를 지시하고, 수사를 대비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의 비화폰 통신 기록 삭제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으로서 비상상황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 따라 비상계엄을 해제했다"며 "그런데 특검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기소한 것에서 나아가 국무회의 소집 및 심의를 직권남용으로 의율하고, 공보 행위를 범죄라고 하면서 허위 공보에 의한 직권남용으로 의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수처의 위법한 수사와 체포에 대한 경호처의 정당한 직무 집행을 공무집행방해로 의율하고 있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부 공소사실은 계엄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위로 이중기소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해선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이 추가 기소한 공소사실이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재판의 공소사실에 포함돼 이중기소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체포영장 집행 저지 혐의에 대해 송진호 변호사는 "두 번에 걸친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공수처 수사, 영장 청구, 영장 발부, 영장 집행 전 과정이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며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무위원의 계엄 심의·의결권을 침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김계리 변호사가 "국무위원들에게는 심의권이라는 구체적 권리가 인정되기 어려워 직권남용의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은 위치가 확인돼 빨리 올 수 있는 국무위원을 부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선포문의 사후 작성·폐기 혐의에 대해서는 유정화 변호사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이미 작성한 선포문이 별도로 있었고 강의구 전 비서실장은 행정상 표지를 작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문서를 만들어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꾸며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강의구 전 대통령실부속실장이 사후에 계엄선포문 표지를 작성한 것이고, 한덕수 전 총리는 여기에 대해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면서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비공식 문서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화폰 기록 삭제 혐의와 관련해선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에게 비화폰 기록 삭제를 지시한 적 없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허위 사실 공보를 지시한 혐의와 관련해서는 유 변호사가 이재명 대통령의 타임지 인터뷰를 예시로 들며 "대통령실은 정상회담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밝혔으나, 이 대통령이 미국 요구가 워낙 엄격했다고 타임지에 말한 것은 직권남용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며 "(특검 측 논리는) 역대 모든 대통령실 공보나 발표는 형사처벌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우려를 줄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대외신인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며 "헌정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이고, 대통령과 국회 모두 각자의 역할에 의해 시스템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공보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의 기소는 법적 근거에 기초했다기보다 정치적 목적이 포함된 기획 기소"라고 강조했다.
공소사실 인부 절차를 마친 후 재판부는 양측에 질문을 하며 쌍방의 입장을 추가로 확인했다. 계엄선포문 사후 작성·폐기 혐의에 대해서는 "한 전 총리 지시만으로 국법상 문서로서의 성격이 없어진다는 근거는 뭐냐"고 물었다.
이에 윤 전 대통령 측은 "한 전 총리는 행정 총괄이었기 때문에 폐기를 지시한 게 효력을 없앤다고 법리적으로 생각하는데, 구체적 판례를 추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도 직접 나서 "제가 강 전 실장이 왜 하느냐고 나무랐는데, '갖고만 있겠다'고 했다"며 "저는 한 전 총리가 이야기하면 저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히 (폐기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검팀에 윤 전 대통령 측이 공수처의 수사권 문제를 지적하는 데 대한 의견도 물었다. 이에 특검팀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이견이 있더라도 법적으로 다퉈야지 물리적으로 하는 건 범죄"라며 "(수사권 문제는) 복잡한 법적 쟁점에 대해 향후 변론 과정에서 충분히 주장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특검팀은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위한 집중심리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특검법에) 1심 재판을 6개월 안에 마무리하도록 돼 있어 주 1회 이상 재판을 진행하려 한다"며 "주로 금요일에 하고, 주 2회를 진행하게 되면 화요일에도 재판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달 10일 두 번째 공판기일을 열어 김대경 전 경호처 지원본부장 등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달 중 10·17·21·31일 네 차례 공판을 진행한다. 주된 재판 기일은 금요일이다. 가능하다면 화요일까지 포함해 매주 두 차례 공판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재판부가 이날 중계를 허용함에 따라 재판 과정은 개인정보 비식별화 과정 등을 거쳐 인터넷에 영상이 공개된다. 선고가 아닌 하급심 재판 진행 과정이 중계되는 건 이번이 첫 사례다. 앞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선고가 생중계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에서 검사석과 본인 앞 화면에 띄워진 PPT를 보며 공소사실을 경청했다. 중간중간 눈을 살짝 감거나 변호인단과 이따금 논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란 특검은 지난 7월 19일 체포영장 집행 저지, '계엄 국무회의' 관련 국무위원의 심의권 침해,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 비화폰 기록 삭제, 계엄 관련 허위 공보 등 크게 5가지 혐의로 윤 전 대통령을 추가로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지난 7월 10일 윤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곧바로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특검 소환 조사나 내란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채 두문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