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돌아오다니…한때 한국 하늘 지배했는데, 다시 나타난 멸종위기 ‘이 동물’

2025-10-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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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강에 나타난 멸종위기 맹금, 솔개의 비밀
생태계의 건강을 알려주는 자연의 청소부

지난달 27일 오후 충북 청주 미호강 팔결교 인근. 가을빛이 드리운 하늘 위로 검은 날개를 활짝 편 맹금류 한 마리가 유유히 선회했다. 강줄기를 따라 흐르듯 움직이며 보여준 위풍당당한 실루엣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것은 바로 한때 한국 하늘을 지배했던 맹금, 솔개였다.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솔개는 이름은 친숙하지만 실제 자연 속에서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거나 월동하는 개체 수는 고작 70여 마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보니, 이번 청주 미호강에서의 관찰은 단순한 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생태학적 가치뿐 아니라 지역 보전 정책에도 큰 함의를 던지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박종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솔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종”이라며 “미호강에서 솔개가 관찰됐다는 건 그만큼 하천 생태계의 건강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미호강 생태계 조사가 진행 중인데, 결과에 따라 보호지역 지정을 적극 요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솔개는 사실 낯선 존재가 아니다. 1960년대만 해도 서울 종각, 창덕궁 주변에는 매일 저녁 260~270마리의 솔개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농약 남용,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대형 나무와 습지의 소멸은 솔개를 급격히 몰락시켰다. 한때 흔했던 새는 불과 반세기 만에 멸종위기종으로 밀려났다.

지난 5월 11일 경남 남해군 한 섬에서 촬영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솔개. 기사와 무관 / 환경부 제공, 연합뉴스
지난 5월 11일 경남 남해군 한 섬에서 촬영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솔개. 기사와 무관 / 환경부 제공, 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솔개가 우리 생활사 속에서 남긴 흔적들이다. 민요와 속담,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솔개는 때로는 병아리를 낚아채 불청객으로 여겨졌고, 때로는 죽은 고기를 처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자연의 청소부’로 존중받았다. 인간과 갈등하면서도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던 것이다.

솔개의 학명은 Milvus migrans lineatus. ‘줄무늬 있는 떠도는 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이름처럼 날개와 몸통에는 밝고 어두운 갈색 줄무늬가 교차한다. 분포는 시베리아, 러시아 극동, 중국 북부에서 한국, 일본, 대만 연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지만, 한국 내 개체군은 극히 적다. 특히 낙동강 하구에 집중돼 있으며, 미호강 같은 지역에서의 목격은 드문 사례다.

솔개는 대형 맹금류지만 사실상 기회적 포식자이자 청소동물이다. 살아 있는 작은 새나 물고기를 사냥하기도 하지만, 죽은 고기나 썩은 물고기를 먹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어시장, 도살장, 쓰레기장 근처에 모여드는 장면이 자주 보고된다. 이러한 생태적 습성은 솔개를 ‘자연의 청소부’로 불리게 했다.

이번 미호강 출현은 단순한 조류 관찰 기록을 넘어선다. 금강의 최대 지류인 미호강은 넓은 하폭, 발달한 모래톱, 주변 농경지 덕분에 다양한 조류 서식처로 기능해왔다. 물떼새, 백로류, 맹금류가 모여드는 충청권 대표 습지 축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각종 개발 압력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다. 하천 정비, 제방 확장, 농경지 확대로 수변 생태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솔개의 출현은 강력한 메시지다. 이곳이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의 보고라는 방증이다.

지난 5월 10일 경남 고성군 한 섬에서 촬영된 먹이를 들고 번식지로 이동하는 솔개. 기사와 무관 / 환경부 제공, 연합뉴스
지난 5월 10일 경남 고성군 한 섬에서 촬영된 먹이를 들고 번식지로 이동하는 솔개. 기사와 무관 / 환경부 제공, 연합뉴스

물론 이번에 목격된 솔개가 단순한 이동 중 개체인지, 실제로 미호강을 월동지로 삼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단 한 마리 솔개의 비행은 과거 수백 마리가 저녁 하늘을 물들였던 기억을 되살리며, 동시에 우리가 생태 보전에 성공한다면 다시 그날이 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솔개는 더 이상 과거 속 추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호강에서의 우연한 조우는 ‘보전의 의지’가 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필요한 건 정책적 결단이다. 미호강과 같은 주요 하천의 습지와 모래톱을 법적으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장기적 생물다양성 조사와 시민 참여형 모니터링을 병행해야 한다.

유튜브, 새덕후 Korean Birder

하늘을 가르던 솔개의 그림자가 청주 미호강 위에 드리운 지금, 그것은 단순한 조류 관찰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던져진 물음이다. 우리는 과연 자연과 더불어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솔개는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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