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소고기 할인” 대형마트 광고 믿고 샀는데... 다들 깜빡 속았다

2025-09-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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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게 가야 할 혜택이 유통업체에 귀속”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매대에 바나나가 진열돼 있다. / 뉴스1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매대에 바나나가 진열돼 있다. / 뉴스1

"바나나는 왜 오르나."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수입 과일 가격 상승을 두고 던진 질문이다. 수입 규제 품목도 아니고 국내에서 생산하지도 않는 바나나의 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질타는 정부의 물가 통제 역량 상실을 겨냥한 것이었다. 최근 감사원이 공개한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이 대통령 지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해당 보고서엔 정부가 500억원을 쏟아부은 농축산물 할인 지원사업이 대형 유통업체만 배불리는 구조로 변질됐고, 정부는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과값이 올라서 쌀값이 올랐다는 대체 효과 논리는 이해하지만, 바나나는 왜 오르나"며 "바나나는 수입 규제 품목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대체 수요가 늘어난다고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바나나 수출할 때 일본에는 500원에 팔고 한국에는 700원에 파는 것이냐"며 "그런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바나나를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매달 500억원 안팎의 바나나를 수입한다. 수입 과일 중 단연 1위다. 키위나 오렌지가 바나나 다음으로 많이 수입된다. 한국은 유독 수입 과일과 수입 소고기의 가격이 비싼 나라다. 한국 수입 과일과 축산물의 가격이 주요 10개 나라 중 가장 비싸다는 통계가 2021년 나오기도 했다.

감사원이 지난 18일 공개한 '농림축산식품부 정기감사' 보고서는 농축산물 할인 지원사업 등 정부 물가대책의 민낯을 드러냈다. 농축산물 할인 지원사업은 정부가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줄이고자 2020년 7월 도입한 뒤 약방의 감초처럼 즐겨 쓰는 물가대책 카드다. 농축산물 구매 시 20~30% 범위에서 최대 2만원을 할인 지원하는데, 2020~2023년 집행액은 4335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의 2026년 예산안에도 1080억원이 반영됐다.

감사원은 이 사업을 두고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유통업체에 귀속됐다"고 지적했다. 2023년 6~12월 대형 유통업체 6곳의 할인 품목 313개 가운데 132개(42%)는 행사 직전 가격을 인상했고, 이 중 45개 품목은 20% 이상 올린 뒤 '할인 행사'로 둔갑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미국산 소고기. /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미국산 소고기. / 뉴스1

A업체는 할인 행사를 시작한 2023년 12월 7일 시금치 판매 가격을 직전 주(100g당 589원)보다 33.8% 오른 788원으로 인상한 뒤 이를 기준으로 20%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다른 5곳 업체도 행사 도중 가격을 올린 뒤 다시 할인하는 꼼수를 썼다.

감사원은 특히 농식품부가 지난해 9월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대로 내버려 뒀다고 꼬집었다. 꼼수를 부린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원금까지 독식했다. 농식품부는 2023년 직접 지정한 품목만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대형업체 6곳의 품목 확대 요구를 받아들여 2∼5월에만 33억8000만원을 몰아줬다. 같은 해 12월에는 예비비 119억원을 전액 대형업체에 지원하면서 중소업체를 배제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물가는 담합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 유통망을 특정 몇 개 가공식품 회사나 유통 회사가 독과점하고 있다"며 "정부가 강력하게 작동하면 정부 눈치를 보는데, 정부가 관심을 안 가지거나 통제를 안 한다고 확신이 들면 막 올려버린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보고서는 이 대통령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환율 문제도 물가 상승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대통령은 "2023년 12월부터 환율이 굉장히 높았다. 우리처럼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는데 수입할 때 환율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분석된 건 아니지만 정부 통제 역량의 상실이 물가 상승의 이유라고 추측한다"며 "정부가 작동하지 않은 측면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물가대책으로 즐겨 쓰는 할당관세도 효과가 의심스럽다. 할당관세란 물가 안정,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원활한 물자 수급 등을 위해 특정 수입 품목에 대해 일정 수량까지 인하된 관세율을 적용하는 탄력관세의 일종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2년 미국산 냉장 소갈비는 할당관세 적용으로 수입가격이 23% 떨어졌지만, 소비자가격은 전년 대비 45% 뛰었다. 오렌지도 2024년 수입가격은 27% 내렸으나 소비자가격은 4.6% 상승했다. 파인애플·바나나 역시 2023년 수입단가는 20% 넘게 내렸지만 소비자가격이 올랐다.

이 대통령은 "할당관세를 줘서 수입해 올 때 소비자 가격 인하로 연결되는지 끝까지 추적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 식품 가격이 다 한꺼번에 많이 올랐다. 그때 단속해 본다고 했는데 잠깐 할인 행사를 하더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정부의 통제, 개입, 조절 기능이 약화돼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감사원은 "유통업체가 가격을 올린 뒤 이를 기준으로 할인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실효성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라"고 농식품부에 통보했다. 또 대형업체 전용 지원사업을 추진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물가가 1.5배 높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식료품과 생활용품 가격이 유난히 높다"며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고 지도하고 개입하면 상당 정도 완화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국무회의에서 바나나가 가격을 예로 들며 정부의 물가 통제 역량 상실을 지적했다. / MBC 뉴스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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