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흔한 꽃이었는데… 희귀 감염병 치료 실마리 된 '한국 자생식물'

2025-10-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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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붓꽃에서 인체 독성 거의 없는 천연 성분 확인
물놀이 감염으로 치명률 높은 아메바성 수막뇌염 치료 후보 물질로 주목

국내 자생 식물에서 치명적인 아메바를 죽일 수 있는 성분이 발견됐다.

부채붓꽃.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부채붓꽃.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열대의학교실 나병국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원발성 아메바성 수막뇌염을 일으키는 ‘파울러자유아메바’를 사멸시키는 물질을 국내 자생 식물인 부채붓꽃에서 찾아냈다고 1일 밝혔다.

파울러자유아메바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원생생물로 따뜻한 민물에 주로 산다. 여름철 강이나 호수에서 수영이나 물놀이를 할 때 코로 물이 들어가면 이 아메바도 함께 침투해 후각 신경을 타고 뇌까지 파고들 수 있다.

감염되면 며칠 안에 두통과 발열, 구토 증상이 나타나고, 급격히 중증으로 진행돼 대부분 일주일 이내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 사례 자체는 흔치 않지만 미국, 인도 등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2022년 해외에서 유입된 첫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연구팀은 한국 습지에 자생하는 보랏빛 꽃, 부채붓꽃에서 특별한 성분을 찾아냈다.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잔톤 배당체(DX)’라는 물질로, 식물에 흔히 들어 있는 천연 화합물 가운데 하나다. 잔톤 계열 성분은 항산화나 항염 효과가 알려져 건강식품 연구에도 자주 등장하는 물질이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제공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제공

이번 실험에서 이 성분을 뽑아내 파울러자유아메바와 뇌세포를 함께 배양한 결과, 뇌세포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아메바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효능이 확인됐다. 기존 치료제로 쓰이던 ‘암포테리신B’가 독성이 강해 환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전성이 높은 새로운 후보 물질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번 연구 성과는 천연물 기반 신약 개발 분야에서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 이토메디신(Phytomedicine)’ 2025년 11월호에 게재가 확정됐다. 학술적으로도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오영택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이용기술개발실장은 “이번 연구는 공공기관과 대학교가 협력해 치명적인 감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후보 물질을 찾아낸 중요한 성과”라며 “앞으로도 학계와의 협력을 넓히고, 토종 생물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고부가가치 생물소재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제공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제공

부채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 시베리아 동부 등 동북아시아의 냉랭한 지역 습지에서 널리 자란다. 잎은 길고 납작하며 부채처럼 퍼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 이름이 붙었고, 뿌리줄기는 땅속을 따라 옆으로 뻗어가며 군락을 이룬다.

매년 6~7월이면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 꽃을 피우는데 꽃잎 가장자리는 물결처럼 퍼지고 중앙에는 흰색이나 노란색 무늬가 들어가 관상 가치가 높다. 습지나 강가에서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모습은 여름철 풍경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야생화로 꼽힌다.

예로부터 뿌리줄기는 해열이나 진통, 이뇨 등에 쓰이는 약재로 이용되어 왔다. 민간에서는 해독과 염증 완화 효능이 있다고 전해져 다양한 치료에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습지 생태계의 지표 식물로도 알려져 있어 생태적 가치와 더불어 전통 약용 가치까지 함께 지닌 식물이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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