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숲과 지구 걱정... 침팬지의 어머니, 세상과 작별하다
2025-10-0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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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제인 구달 박사는 지구에 어떤 유산 남겼나

"저기 침팬지가 나뭇가지로 개미를 잡아먹고 있어요." 1960년 탄자니아 곰베의 울창한 숲에서 26세 젊은 여성이 쌍안경으로 침팬지를 관찰하며 기록한 이 한 문장은 인류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그때까지 과학계는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제인 구달 박사의 발견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그로부터 65년간 침팬지와 함께 살아온 '침팬지의 어머니' 구달 박사가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제인구달연구소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달 박사가 미국 강연 투어로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중 자연적 요인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지구와 생명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여행 중이었다.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사랑했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비서로 일하던 그는 23세에 케냐로 건너가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났고,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1960년 탄자니아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구달 박사는 침팬지가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며, 사회적 행동과 개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1964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리며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학계의 권위자들은 "인간을 재정의하거나, 도구를 재정의하거나,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충격에 빠졌다. 구달 박사의 발견은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냈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연속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구달 박사의 연구 방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그는 침팬지를 숫자 대신 이름으로 부르며 각각의 개성과 감정을 인정했다. 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팬지들이 기쁨, 슬픔, 분노를 느끼고, 가족 관계를 형성하며, 심지어 전쟁까지 치른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이러한 관찰은 침팬지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했다.
1965년 침팬지와 개코원숭이의 생태 연구를 위해 곰베 스트림 연구센터를 설립한 구달 박사는 10여 년간 현장에서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기존 학계의 틀을 깬 인물이었다.
연구자로서의 성취를 넘어 구달 박사는 환경운동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1977년 곰베 연구 지원과 아프리카 보전을 위해 제인구달연구소를 설립했고, 침팬지 서식지 파괴 문제가 심각해지자 연구실을 떠나 전 세계를 돌며 환경 보호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침팬지를 보호하려면 그들이 사는 숲을 지켜야 하고, 숲을 지키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통합적 접근을 강조했다.
1991년에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환경교육 프로그램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을 시작해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확산했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구달 박사는 "변화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90대가 돼서도 구달 박사는 일 년에 300일 가까이 여행하며 강연했다. 그는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 UN 평화대사로서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희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평생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구달 박사는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글로 남겼다. 그의 책들은 과학적 관찰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생명에 대한 존중, 지구의 미래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그는 복잡한 과학 개념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구달 박사의 업적은 수많은 상과 명예로 인정받았다. 그는 전 세계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이 연구한 침팬지들과 그들의 서식지가 보호받는 것이었다. 곰베 국립공원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야생동물 연구 프로젝트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구달 박사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데이터와 숫자로만 말하지 않고, 침팬지 한 마리 한 마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 플로, 프로도 같은 침팬지들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개성 있는 존재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러한 접근은 사람들이 동물을 단순한 자원이나 연구 대상이 아닌, 감정과 권리를 지닌 생명체로 보는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구달 박사는 인간의 지능이 반드시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면서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특별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달 박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마음과 정신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숨진 당일에도 구달 박사는 여전히 강연 투어 중이었다. 91세의 나이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침팬지들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목소리를 냈다. 그런 측면에서 구달 박사의 삶은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제인 구달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과학적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생명은 연결돼 있다는 진실을 일깨웠다. 침팬지의 눈을 통해 인간을 바라본 그의 시선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