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 뒷면 작은 글씨…소비자는 잘 모르는 ‘이 문구’ 진짜 의미

2025-10-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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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제조시설’ 문구의 숨은 의미

식품을 살 때 대부분은 앞면의 브랜드와 제품명만 본다. 하지만 뒷면에 빼곡히 적힌 작은 글씨 속에는 중요한 정보가 숨어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마트나 편의점에서 제품을 고르다 보면 포장 뒷면에 빽빽하게 적힌 성분표 가운데 ‘우유, 대두, 밀, 복숭아’ 같은 단어가 눈에 띄게 표시돼 있거나, ‘이 제품은 ○○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얼핏 형식적인 안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작은 글씨는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생명을 가를 만큼 중요한 정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원재료를 반드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유, 달걀, 메밀, 땅콩, 대두, 밀, 고등어, 게, 새우, 돼지고기, 복숭아, 토마토, 호두, 닭고기, 쇠고기, 오징어, 조개류, 잣 등 20여 가지가 대표적이다. 이 성분이 실제로 들어갔다면 원재료 표시와는 별도로 따로 눈에 띄게 기재해야 한다. 알레르기를 가진 소비자가 실수로 해당 식품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알레르기 유발식품 표시 확인방법 / 식품의약품안전처 카드뉴스 캡처
알레르기 유발식품 표시 확인방법 / 식품의약품안전처 카드뉴스 캡처

그렇다면 제품에 실제로 들어 있지 않은 성분을 왜 ‘동일한 제조시설에서 제조한다’고 밝히는 걸까. 이는 제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극소량이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리는 표시다. 같은 공장이나 동일한 생산 라인에서 여러 제품을 번갈아 만들다 보면 설비 세척을 거쳤더라도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미량 남아 다른 제품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를 ‘교차 오염’이라고 하는데,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그 극소량조차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알려주는 것이다. 땅콩 과자를 만든 기계로 곧바로 쿠키를 생산한다면, 원재료에 땅콩이 없더라도 미량의 단백질이 섞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주의해야 할 점은 ‘교차 반응’이다.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유사한 단백질 구조를 가진 다른 식품에도 반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면 게나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 전반을 조심해야 하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면 사과나 자두, 체리 등 같은 과일군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견과류 역시 마찬가지로, 호두 알레르기가 있다면 캐슈넛이나 헤이즐넛 등에도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제조공정.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제조공정.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제조업체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설비를 철저히 세척하고 공정을 관리해야 하며 소비자는 작은 글씨라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포장지 뒤편의 알레르기 표시는 단순한 의무 문구가 아니라, 일상에서 소비자가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나 특정 성분에 예민한 성인에게는 이 한 줄의 문구가 ‘먹을 수 있는가, 피해야 하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작은 글씨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지만, 결국 이는 소비자 스스로를 지키는 마지막 경계선이다. 제품을 고를 때 가격이나 맛만큼이나 포장지 뒷면의 표시사항까지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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