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사는 건 여자, 더 건강하게 체력 좋은 건 남자"
2025-10-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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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의 성별 차이, 그 숨겨진 이야기
65세 이후 신체 기능, 얼마나 유지될까?
질병관리청이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일환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생활 기능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평가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노인 생활 기능 척도(LF-10) 조사 결과, 남녀 간 기능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나이가 들수록 기능 점수가 점진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전국 65세 이상 남성 812명, 여성 113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다리·상체 동작, 일상생활 수행 능력, 사회활동 참여 등 10개 항목을 개발해 각 항목을 10점 만점으로 평가, 총점 100점으로 환산했다. 다리 동작에는 의자에서 일어나기, 몸을 구부리거나 쪼그리고 앉기, 400m 걷기, 건물 한 층을 쉬지 않고 오르기 등이 포함됐다. 상체 동작 항목은 5㎏ 물건 들기, 작은 물건 집기 등으로 구성됐다. 일상생활 항목으로는 목욕·샤워, 대중교통 이용 등이 조사됐다.

전체 평균 점수는 85.9점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로는 65~69세가 92.6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70~74세 89.7점, 75~79세 83.8점, 80세 이상 70.6점으로 나이가 들수록 점수가 떨어졌다. 성별로 보면 남성 평균 점수는 92.1점, 여성은 80.9점으로 11.2점 차이를 보였다.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남성이 82.9점, 여성이 64.3점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18.6점 높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골다공증과 근육 감소증 실태도 함께 확인됐다. 남성의 골다공증 유병률은 3.8%인 반면 여성은 31.6%로 월등히 높았다. 80세 이상에서는 남성 4.3%, 여성 45.9%로 격차가 더욱 커졌다. 근육 감소증은 남성 9.5%, 여성 9.3%로 성별 차이는 크지 않았다.
오경원 질병청 건강영양조사분석과장은 “골다공증이나 근육 감소증이 있으면 생활 기능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며 “특히 하체 동작 중 몸을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는 항목에서 여성의 기능이 남성보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성의 기능 점수가 낮은데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더 오래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 기대수명은 80.6세, 여성은 86.4세로 나타났다.

정희원 서울시 서울건강총괄관(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은 “여러 기전으로 대부분 포유류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성은 50대에 폐경이 시작되면서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근육량과 골밀도도 빠르게 떨어진다. 기능 점수가 낮은 상태로 오래 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남성은 체격과 근육량이 많아 신체 기능 악화를 일정 부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대수명은 생활 기능 점수보다 흡연, 음주 등 다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오경원 과장은 “생활 기능 점수는 기대수명보다는 건강한 노화, 즉 건강수명과 더 연관성이 깊다”고 덧붙였다.
최정연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는 “현재 고령 여성들은 세탁기 없는 시대에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 일을 자주 한 경험이 있어 기능 점수가 낮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남성은 젊을 때부터 신체 활동량이 많아 골밀도가 높고 폐경 같은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은 폐경 전후 신체 변화에 맞춘 운동과 식습관 관리가 중요하다. 정 총괄관은 “폐경기에는 걷기 중심 운동뿐 아니라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병행해야 한다”며 “젊은 시절 소식이나 채식 중심 식습관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갱년기에는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늘리는 것이 근육과 골밀도 유지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LF-10 조사는 국내 노인의 생활 기능과 건강 문제를 정량적으로 확인한 첫 사례로, 노년층 건강 정책과 예방 프로그램 개발에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근력 운동과 균형 잡힌 단백질 섭취, 골밀도 관리가 노인 건강과 기능 유지에 핵심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