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일본인 교수 "이제 암도 고칠 수 있다"
2025-10-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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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좇아 연구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어떤 분야든 자신의 흥미를 추구하면 새로운 것이 보일 겁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오사카대 명예교수 사카구치 시몬(74)은 6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몰두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해온 그는 끝없는 호기심이 과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 자가면역 질환 치료의 길을 연 ‘조절 T세포’ 발견
사카구치 교수는 면역계의 과잉 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regulatory T-cell)’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인물이다. 이 세포는 인체의 면역체계가 외부 병원균을 공격할 때, 과도하게 활성화돼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을 막는 역할을 한다. 즉, 몸을 보호하는 면역 반응이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그의 발견은 류머티즘 관절염, 제1형 당뇨병,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등 자가면역 질환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나아가 조절 T세포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암이나 이식 거부 반응 같은 복잡한 질환의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카구치 교수는 이 공로로 미국의 생명과학자 메리 E. 브렁코(64), 프레드 램즈델(65)과 함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 “면역은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공격하는 존재”
그가 처음 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면역계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공격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 이유를 밝힐 수 있다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의문 하나로 수십 년간 실험과 논문을 이어갔다. 연구 초창기엔 동료 학자들조차 ‘면역이 자기 억제 기능을 가질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5년, 마침내 조절 T세포의 실체를 증명해 학계의 인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사카구치 교수는 “기초 연구는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실제 치료나 예방으로 이어진다”며 “그 과정이 과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기초 연구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암이나 자가면역 질환 치료에 실질적으로 응용되는 연구를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 “암 면역 요법,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현대 의학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암 치료에서도 그의 연구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사카구치 교수는 “암은 면역 반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라며 “암이 발견된 순간부터 면역 반응을 높여 전이와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면 치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에 대한 면역 요법은 안전하고 효과가 높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절 T세포를 억제해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게 만드는 치료법은 이미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섰다. 사카구치 교수는 “비정상적인 암세포에 백신처럼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암의 근본적 치료법이 될 것”이라며 “20년 안에는 암도 완치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미래를 위한 투자”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그는 일본 정부의 과학 연구 지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면역학 분야만 보더라도 일본의 연구비 지원은 비슷한 경제 규모의 독일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는 “기초과학은 눈앞의 이익보다 긴 안목이 필요한 분야이기에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단순히 학문적 요청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제언이기도 하다. 사카구치 교수는 “지금의 연구는 다음 세대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며 “과학이란 결국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 “암도 언젠가 고칠 수 있는 병이 된다”
그는 노벨상 수상 발표 직후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와의 통화에서 “암 치료로 연구가 발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사카구치 교수는 “T세포는 면역 반응을 억제하지만 동시에 암세포에 대한 공격 반응도 조절한다”며 “이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조절 T세포를 활용한 치료법이 임상 현장에서 자리 잡기까지는 2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며 “머지않아 암이라는 무서운 병도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 일본, 2년 연속 노벨상 수상 영예
사카구치 교수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의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총 6명으로 늘었다. 일본은 지난해 니혼히단쿄 연구진의 수상에 이어 2년 연속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01년 노벨상 제정 이후 일본 출신 수상자는 외국 국적 취득자를 포함해 개인 29명, 단체 1곳에 이른다.
◆ “호기심이 사라지면 과학은 멈춘다”
끝으로 그는 기자회견에서 후배 연구자들에게 남긴 말로 다시 한 번 과학자의 초심을 되새겼다.
“연구는 끊임없는 궁금증에서 시작됩니다. 흥미를 잃지 말고, 자신이 정말 알고 싶은 문제를 파고들면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합니다.”
그의 말처럼, 노벨상의 영예는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호기심과 끈기, 그리고 ‘기초과학의 힘’을 믿은 한 연구자의 긴 여정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