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 가입조차 막히는 세입자들”…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거절 3년 연속 증가
2025-10-07 13:30
add remove print link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매년 상승, 임대인 과실이 77% 차지
박용갑 의원 “보증심사 중 보증금은 HUG가 예치해야” 제안

[대전=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세입자들이 안전장치로 믿었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조차 가입이 거절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를 강화해왔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보증 가입조차 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중구)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거절 건수는 2021년 2,002건 → 2022년 2,351건 → 2023년 2,596건 → 2024년 2,890건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며 전세보증 시스템이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절 사유를 살펴보면,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산한 금액이 주택가격을 초과한 ‘보증한도 초과’가 전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2024년에는 1,412건으로 2020년 대비 약 2배 늘었다. 이어 임대인의 과실로 인해 가입이 불가능한 ‘임대인 보증금지’ 사례도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 임차인의 단순 과실(서류 미비 등)에 의한 거절은 전체의 22.5%에 불과해, 보증 실패의 77%가 임대인 책임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세입자 보호장치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일부 임차인들은 전세계약서에 ‘보증보험 가입 불가 시 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특약을 명시했지만, 실제 보증이 거절된 뒤에도 임대인이 계약 해지를 거부하거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2월 수원지방법원은 임대인에게 보증금 1억7천만 원을 반환하라는 판결(2024가단599826)을 내리며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 임대인의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용갑 의원은 “임차인이 보증보험 가입 신청을 할 때 이미 임대인에게 보증금이 넘어간 상태라, 보증이 거절되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보증심사 기간 동안 HUG가 임차인의 보증금을 예치·관리하고, 거절 시 즉시 반환하는 ‘에스크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도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영국은 부동산 임대 시 임차인의 보증금이 반드시 ‘정부 공인 보증기관(TDP, Tenancy Deposit Protection)’에 예치되며, 분쟁 시 해당 기관이 직접 반환 여부를 결정한다.
독일 역시 ‘임차보증금 관리계좌(Mietkautionskonto)’ 제도를 통해, 보증금은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은행 등 제3의 기관에 보관된다. 이를 통해 계약이 무효되거나 임대인이 파산하더라도 보증금이 보호된다.
반면, 한국은 보증기관이 심사를 거부하면 세입자는 즉시 전세사기 위험에 노출되지만, 보증금 환급을 보장할 장치가 없다.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는 도입됐지만, 가장 기본적인 ‘보증가입 단계의 안전장치’는 여전히 비어 있는 셈이다.
박용갑 의원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임차인의 마지막 안전망이자 국가가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라며 “보증가입 심사제도 개선과 임대인 책임 강화로 실질적인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값과 전세금의 불안정 속에 세입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계약서에 찍힌 도장보다, 보증심사 통과가 더 어렵다는 현실에서 ‘보증’의 이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