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고 보니 영화광들이라면 알 만한 이 사람

2025-10-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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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토리노의 말' 등 각본 공동 집필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 / 'Louisiana Channel' 유튜브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 / 'Louisiana Channel' 유튜브

헝가리의 세계적인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가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은 2002년 임레 케르테스 이후 23년 만이다. 지난해에는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종말론적 두려움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그의 강렬하고 선구적인 전체 작품"을 수상 이유로 들었다. 한림원은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프란츠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로,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그의 활에는 더 많은 줄이 있으며, 그는 곧 중국과 일본 여행에서 받은 깊은 인상에서 영감을 받은 일련의 작품에서 더욱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채택하며 동양을 바라본다"고 덧붙였다.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스웨덴 한림원 홈페이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스웨덴 한림원 홈페이지

한림원 위원장인 안데르스 올손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5편의 서사시적 소설들은 '종말론적' 작품으로 묘사될 수 있다"며 "그의 두 번째 책 '저항의 멜랑콜리'를 읽은 후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택은 크러스너호르커이를 현대 문학의 '종말론의 대가'로 칭했다"고 말했다. 올손은 "이러한 종말론적 서사시들과 함께 '서왕모의 강림'을 그의 주요 작품으로 추가할 수 있다"며 "이 책은 피보나치 수열로 배열된 17개의 이야기 모음으로, 맹목과 무상함의 세계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적 창조의 역할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날 스웨덴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첫날"이라며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중 수상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1954년 루마니아 국경 근처 헝가리 남동부 작은 마을인 줄러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헝가리 공산주의 체제의 경험이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87년 서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후 시작한 여행들도 작품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85년 첫 소설 '사탄탱고'로 데뷔해 헝가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림원은 이 작품을 "문학적 센세이션이자 작가의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이 소설은 공산주의 붕괴 직전 헝가리 시골의 버려진 집단농장에서 살아가는 빈곤한 주민들의 모습을 강렬하고 암시적인 표현으로 그려냈다. 소설 속 주민들은 모두가 죽었다고 믿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이리미아시와 그의 동료 페트리나가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 침묵과 기대 속에서 지낸다. 대기하던 주민들에게 그들은 희망의 메신저이자 최후 심판의 전령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1994년 감독 벨러 타르와의 협업으로 독창적인 영화로도 제작됐다.

1989년 발표한 '저항의 멜랑콜리'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명성을 더욱 높인 작품이다. 카르파티아 계곡에 자리한 헝가리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병 같은 공포 판타지인 이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어지러운 비상사태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불길한 징조들이 가득한 가운데, 도시에 도착한 유령 같은 서커스단의 거대한 고래 사체가 주요 볼거리로 등장한다. 이 신비롭고 위협적인 광경은 극단적인 힘들을 촉발시켜 폭력과 파괴 행위가 확산된다. 한편 무정부 상태를 막지 못하는 군대의 무능력은 독재 쿠데타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꿈 같은 장면들과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를 통해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잔혹한 투쟁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1999년 발표한 소설 '전쟁과 전쟁'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헝가리 국경을 넘어 시선을 확장했다. 겸손한 기록 보관인 코린이 인생의 마지막 행위로 부다페스트 외곽에서 뉴욕으로 여행하기로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잠시나마 세계의 중심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고향 기록 보관소에서 그는 귀환하는 전사들에 관한 매우 아름다운 고대 서사시를 발견했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산문은 마침표가 없는 길고 구불구불한 문장들이 흐르는 통사 구조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됐다.

2016년 발표한 대작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구르는 피카레스크 양식의 '전쟁과 전쟁'을 예고하지만, 이번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문학 전통을 화려하게 활용하며, 도스토옙스키의 백치가 도박 중독에 빠진 절망적으로 사랑에 빠진 남작으로 환생한다. 이제 파산한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세월 망명 생활을 한 후 헝가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연인과 재회하기를 희망한다. 불행하게도 여행 중 그는 자신의 삶을 배신자 단테의 손에 맡기게 되는데, 단테는 산초 판사의 더러운 버전으로 제시된 악당이다. 여러 면에서 소설의 희극적 절정인 지역 사회가 남작을 위해 마련한 즐거운 환영회는 우울한 주인공이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행사다.

2021년 출간된 '헤르슈트 07769'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다섯 번째 '종말론적' 서사시로 꼽힌다. 이 작품은 카르파티아 지역의 열병적 악몽이 아니라 독일 튀링겐주의 현대 소도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역시 사회적 무정부 상태, 살인, 방화로 고통받는다. 동시에 소설의 공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강력한 유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 호흡으로 쓰인 이 책은 폭력과 아름다움이 '불가능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독일의 사회적 불안을 정확하게 묘사한 점에서 위대한 현대 독일 소설로 평가받았다. 주인공 헤르슈트는 순진하고 마음이 넓은 아이의 전형이자 도스토옙스키 정신의 성스러운 바보로, '저항의 멜랑콜리'의 볼루슈카처럼 자신이 신뢰한 세력이 바로 마을의 파괴를 주도한 세력임을 깨닫고 강하게 반응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양을 향한 사색적 작품들도 창작했다. 2003년 소설 '북쪽의 산, 남쪽의 호수, 서쪽의 길, 동쪽의 강'은 교토 남동쪽에서 펼쳐지는 비밀의 정원을 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강력한 서정적 부분들이 담긴 신비로운 이야기다. 작품은 2008년 발표한 풍부한 작품 '서왕모의 강림'의 전주곡 같은 느낌을 준다.

'서왕모의 강림'은 17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컬렉션으로, 특히 잊을 수 없는 오프닝 장면이 인상적이다. 교토의 카모 강 한가운데 눈처럼 하얀 왜가리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서서 아래 소용돌이에서 먹이를 기다린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새는 예술가의 특별한 상황을 포착한 묘한 이미지가 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 주제는 전설에 따르면 3천 년마다 불멸을 부여하는 열매를 생산하는 정원을 보호하는 세이오보(서왕모)에 관한 일본 신화다. 책에서 이 신화는 예술 작품의 창조에 관한 것이며,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가장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서 그러한 작품의 탄생을 따라간다. 종종 창조 행위는 전통과 숙련된 장인 정신으로 특징지어진 긴 준비 기간 후에 발생한다. 작품들은 지연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의 결과로 탄생하기도 하는데, 유명한 르네상스 화가 피에트로 바누치가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피렌체에서 그의 고향인 페루자로 위험하게 운송하는 이야기가 그 예다. 페루지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가 그림을 포기했다고 모두가 믿는 동안, 페루자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서왕모의 강림'에서 예술가 자신은 이야기에서 종종 부재한다. 대신 곧 탄생할 작품의 약간 옆에 서 있는 인물들이 제시된다. 관리인, 구경꾼, 헌신적인 장인들이 포함될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작품의 의미를 거의 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은 독자가 일련의 '뒷문'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창조 행위로 안내되는 훌륭한 묘사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폭넓은 문학적 레지스터를 보여주는 또 다른 매혹적인 작품은 2018년 출간된 짧은 이야기 '궁전을 위한 자질구레한 일: 타인의 광기로 들어가기'다. 이 매우 재미있고 다소 정신없는 이야기는 한때 그곳에 살았던 위대한 허먼 멜빌과 그의 광적인 추종자들의 유령이 출몰하는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다. 이것은 모방의 저주뿐만 아니라 저항의 축복에 관한 책이다. 우울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2015년 헝가리 작가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등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으며, 노벨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돼 왔다. 당시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놀라운 문장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믿기 힘든 길이의 문장들, 엄숙함에서 광란으로, 의문에서 황폐함으로 어조가 변하며 제멋대로 길을 가는 어조"를 언급하며 극찬했다.

영화 '토리노의 말'의 각본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감독 벨러 타르가 공동 집필했다.
영화 '토리노의 말'의 각본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감독 벨러 타르가 공동 집필했다.

한국에는 현재까지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세계는 지속된다', '서왕모의 강림', '라스트 울프'가 번역돼 출간됐다. 6권 모두 알마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감독 벨러 타르와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88년 '저주'를 시작으로 1994년 '사탄탱고', 2000년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저항의 멜랑콜리' 원작), 2011년 '토리노의 말' 등 여러 영화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특히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사탄탱고'는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노벨상 수상자는 상금 1천100만 크로나(약 16억4000만원)와 메달, 증서를 받는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위원회는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에 이어 문학상을 발표했다. 10일에는 평화상, 13일에는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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