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CF 연체 975억 원, ‘묻지마 차관’이 남긴 그림자
2025-10-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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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래 의원 “기금 신뢰성 훼손…수은, 철저한 관리 시급”
스리랑카·가나·예멘 등 3개국 27건 사업서 원리금 연체
기금 회수·관리 부실 드러나…국내 ODA 정책 전면 재점검 시급

[대전=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개발도상국 지원을 명분으로 한 해외 차관 사업이 수백억 원대 손실로 이어지며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제협력개발기금(EDCF)을 통해 수출입은행이 집행한 유상원조 차관 중 스리랑카, 가나, 예멘 등 3개국에서 총 975억 원에 달하는 원리금이 회수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업 다수가 장기 연체 상태에 놓여 있어 자금 운용의 신뢰성과 효율성 모두에 의문이 제기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이들 3개국의 연체 원리금 규모는 스리랑카 625.7억 원, 예멘 201.9억 원, 가나 147.1억 원에 달한다. 수은은 “예멘은 내전 장기화로 채무 재조정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국가 상황과 상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가나와 스리랑카는 채권국 협의회를 통해 채무 재조정을 거쳤으나, 상환 유예만으로는 기금 회수의 근본적 해법이 되지 않는다. 특히 가나는 이미 채무 불이행 상태임에도,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4년 6월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기존 차관 한도 10억 달러를 20억 달러로 두 배 확대하는 기본협정이 체결돼 논란을 키웠다.

조 의원은 “EDCF는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수출입은행은 보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회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무분별한 차관 확대는 기금의 안정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유상원조 실패 사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회수 불능 상태에 놓인 ODA 차관 문제를 계기로 차관 제공 기준을 대폭 강화했고, 유럽연합은 수원국의 민주주의 수준과 회계 투명성을 지원 조건에 명시하고 있다. 한국 역시 ODA 구조와 타당성 평가 체계를 전면 재검토할 시점이다.
EDCF 차관의 연체와 미회수는 단순한 회계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브랜드, 재정 건전성, 그리고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신뢰성에 직결된 문제다. 정부는 차관 확대 경쟁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회수 가능한 개발협력 모델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