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故 오요안나 사망 1년여 만에 공식 사과…모친 오열

2025-10-1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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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블랙박스,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28살 기상캐스터의 마지막 외침, 직장 내 괴롭힘의 그늘

MBC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의 유족에게 사망 1년여 만에 공식 사과했다.

오요안나 어머니에게 사과하는 안형준 MBC 사장 / 뉴스1
오요안나 어머니에게 사과하는 안형준 MBC 사장 / 뉴스1

안형준 MBC 사장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 1층 골든마우스홀에서 유족과 함께 기자회견 및 합의 서명식을 가졌다. 이날 MBC 측은 고인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명예사원증을 전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했다.

안 사장은 "꽃다운 나이에 이른 영면에 든 故 오요안나 씨의 명복을 빕니다. 헤아리기 힘든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오신 고인의 어머님을 비롯한 유족께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이 합의는,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 한다는 문화방송의 다짐이기도 합니다"라고 밝혔다.

안형준 MBC 사장이 15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상암사옥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MBC-고 오요안나 유족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 뉴스1
안형준 MBC 사장이 15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상암사옥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MBC-고 오요안나 유족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 뉴스1

고인은 2021년 MBC 공채를 통해 기상캐스터로 입사했으나 지난해 9월 15일 향년 28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은 3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유족은 올해 초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동료 기상캐스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원고지 17장 분량(약 2750자)에 달하는 유서를 발견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유족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동료 기상캐스터 A씨를 상대로 5억 10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서울 서부지청을 통해 실시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며 고인에 대한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고인이 프리랜서 신분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어 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인의 모친 장연미 씨는 딸의 사망 1주기를 앞둔 지난달 MBC 사옥 앞에서 회사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고인의 명예 회복 등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장 씨는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5일까지 27일간 단식을 이어갔고, MBC 측과 잠정 합의가 이뤄지면서 농성을 중단했다.

이날 안 사장으로부터 딸의 명예사원증을 받은 장 씨는 사원증을 품에 안은 채 오열했다. 장 씨는 "많은 분들의 응원과 염려, 도움 덕분에 끝나지 않을 거 같은 MBC와의 교섭이 합의에 이르렀다"면서 "딸의 분향소에서 곡기를 끊고 28일간 단식농성을 이어갔던 것이 벌써 꿈같고, 합의서에 서명하기 위해 MBC에 와있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딸 명예 사원증 받고 오열한 오요안나 어머니 / 뉴스1
딸 명예 사원증 받고 오열한 오요안나 어머니 / 뉴스1

장 씨는 "우리 요안나는 MBC를 다니고 싶어 했고, 열심히 방송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날 제 삶의 이유는 무너졌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MBC에 대해서 분노가 깊었고,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곡기를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상캐스터 정규직 전환과 회사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사과 등은 모두 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피켓에 적힌 요구들, 기상캐스터 처우 문제를 요구했는데, 이걸 보고 '왜 이걸 요구하냐'고 한 분도 있었다. 이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프리랜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고통 속에 힘들게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장 내 괴롭힘 역시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기상캐스터 정규직을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씨는 "불이익을 막을 장치를 마련했다"며 "회사에서 약속한 재발 방지 대책은 무겁고, 방송사 전체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걸 알고 있다"며 "딸의 죽음으로 나온 약속이 알맹이가 없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故) 오요안나 / 오요안나 인스타그램
고(故) 오요안나 / 오요안나 인스타그램

MBC는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유족이 괴롭힘 주모자로 지목한 A 씨와 계약을 해지했다. 괴롭힘 의혹과 관련된 다른 기상캐스터들과는 재계약했으나, 올해 연말 계약 기간 만료에 맞춰 기상캐스터 직무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안 사장은 "책임 있는 공영방송사로서, 문화방송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상생협력담당관 직제를 신설해 프리랜서를 포함한 MBC에서 일하는 모든 인력의 고충과 갈등 문제를 전담하는 창구를 마련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대우 등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는 지난 9월 기존 기상캐스터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해당 직무를 폐지하는 대신 '기상·기후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MBC는 고인의 2주기 기일인 2026년 9월 15일까지 MBC 사옥 내부에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래는 MBC 안형준 사장이 고 오요안나 사건과 관련해 발표한 사과문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MBC 대표이사 사장 안형준입니다.

먼저 꽃다운 나이에 이른 영면에 든 故 오요안나 씨의 명복을 빕니다.

헤아리기 힘든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오신 고인의 어머님을 비롯한 유족께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이 합의는,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 한다는 문화방송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MBC는 지난 4월, 상생협력담당관 직제를 신설해 프리랜서를 비롯해 MBC에서 일하는 모든 분의 고충과 갈등 문제를 전담할 창구를 마련했고,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대우 등의 비위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수시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공영방송사로서, 문화방송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故 오요안나 씨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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