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였는데, 먼저 받아…" 정부망 화재로 장기이식 순번 꼬였다

2025-10-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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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시스템 마비, '생명 순서'가 뒤바뀐 실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전산망이 멈춰 서면서 장기이식 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16일 중앙일보는 이같은 실태를 자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생명과 직결된 이식 순위가 전국 단위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병원 간 거리와 지역 여건이 수혜자를 결정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지금의 임시 운영 방식은 사실상 생명 복불복”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복구를 촉구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지난주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에서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한 사례가 있었다. 환자는 이식 대기 명단에 등록돼 있었지만 순위가 낮았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KONOS의 장기이식 관리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뇌사자 발생 병원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수술 기회를 얻었다. 교수는 “이식은 전국 단위 순번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병원 간 거리로 기회가 갈리고 있다”며 “이 정도면 시스템이 붕괴된 수준”이라고 말했다.

화재 이후 장기이식 절차는 임시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에는 KONOS 통합 전산망을 통해 대기자의 응급도, 대기 기간, 혈액형, 연령, 권역 등을 종합해 이식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그러나 전산망이 멈추자 뇌사자가 발생한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수혜자를 고르거나, 인근 병원과 직접 연락해 수술 대상을 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의료계는 “이는 전국 통합 시스템의 기본 원칙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는 화재 발생 사흘 뒤인 지난달 29일 ‘이식대상자 선정을 위한 협조 요청’ 공문을 각 의료기관에 보냈다. 간, 심장, 폐 등 주요 장기의 경우 대기 기간보다는 ‘지리적 근접도’를 우선 고려하라는 내용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이식은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뇌사자 발생 병원에서 우선 수술하도록 한 조치”라며 “이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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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 의료진의 시각은 다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추석 연휴 중 병원에서 발생한 뇌사자의 간을 같은 병원 소속 환자에게 이식했다. 그는 “순위가 한참 뒤였지만 같은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기회를 얻었다”며 “더 급한 환자가 있었을 텐데 죄책감이 남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대형병원의 이식외과 교수도 “지금은 거리와 운이 생명 순서를 결정하는 구조”라며 “이식의 공정성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4만 6천여 명(6월 기준)에 달한다. 그중 상당수는 생명을 위협받는 응급 환자다. 이식 대기 기간은 신장이 평균 2888일, 간 204일, 췌장 2604일, 심장 198일, 폐 202일로 길게 이어진다. 의료계는 “하루라도 빨리 시스템을 복구하지 않으면 시급한 환자가 뒤로 밀리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수도권 한 병원의 교수는 “화재 전까지만 해도 전국 순위권에 있던 급한 환자가 지금은 순서가 밀려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뇌사자 발생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할 경우 응급도를 우선 고려한다”며 “지리적 근접도는 참고 기준일 뿐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서류상 원칙일 뿐, 실제로는 거리와 병원 여건이 우선 순위를 결정한다”고 반박한다.

현재 장기조직혈액 통합관리시스템은 정부 중요도 기준상 3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핵심 인프라인 만큼 1등급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장기이식 관리망은 단순 행정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잇는 국가 시스템”이라며 “정부는 즉시 1등급으로 격상해 최우선 복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산망 복구가 지연되면서 장기이식은 의학적 판단이 아닌 ‘운’과 ‘거리’로 결정되고 있다. 의료계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공정한 시스템이 멈췄다”며 “정부가 더는 임시방편에 의존하지 말고 완전한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home 위키헬스 기자 wikihealth75@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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