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MVP까지 받은 에이스였는데…돌연 은퇴 선언한 '야구선수'
2025-10-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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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팀 kt wiz 그리고 조용한 퇴장
프로야구 kt wiz 베테랑 내야수 오재일(38)이 결국 배트와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17일 kt 구단은 "오재일이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데뷔한 그는 꾸준한 성실함과 파워를 바탕으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타 거포 1루수로 활약했다.
오재일의 프로 인생은 한마디로 끈기와 재도전의 연속이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2005년 입단해 프로 무대에 첫발을 디뎠지만, 초기에는 기대만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시절에도 벤치 멤버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전환점은 2012년 여름 찾아왔다.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잠재력을 터뜨렸다. 장타력을 바탕으로 1루수 포지션을 확고히 했고, 안정적인 수비와 팀을 위한 플레이로 팬들 신뢰를 얻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두산 시절은 오재일 커리어 황금기였다.

2019시즌에는 타율 0.293, 21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때의 활약은 두산 전성기 시절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2020시즌을 마친 뒤 그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 당시 4년 총액 50억 원 규모의 대형 계약이었다. 두산 시절의 꾸준함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삼성에서도 그는 베테랑답게 팀 중심 타선에서 역할을 이어갔다. 2021시즌 25홈런, 97타점으로 팀의 가을야구 진출에 기여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과 체력 저하로 인해 경기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지난해 5월 오재일은 박병호와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kt wiz로 이적했다. 양 팀 모두 타선 보강과 세대교체를 노린 상호 이해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적 첫해부터 예기치 않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가 이어지며 1군 무대에 자주 나서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105경기에서 타율 0.243, 11홈런, 45타점을 기록하며 완벽한 부활에는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신청하지 않고 재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올해는 끝내 1군 출전 기회를 단 한 번도 잡지 못했다. 결국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은퇴를 선택했다.

오재일은 통산 1491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3, 215홈런, 873타점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장타형 1루수로 꼽힌다. 그는 리그 내에서 폭발적인 장타력보다는 꾸준함으로 팀 타선을 받쳐주는 타자로 평가받았다. 특히 30대 중반까지도 장타율 0.500을 유지하며 노장의 품격을 보여줬다.
좌투좌타라는 특성상 상대 수비를 흔드는 능력도 탁월했다. 두산 시절에는 4번 타자로서뿐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맡으며 중심 타선의 무게감을 더했다. 1루 수비에서는 묵직한 송구 처리와 안정된 글러브질로 수비가 되는 거포라는 별칭을 얻었다.
오재일은 구단을 통해 "21년 동안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항상 성실하고 든든한 1루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여러 팀을 거치며 함께했던 지도자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유니폼을 벗지만 야구를 향한 애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두산 시절부터 오재일은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었다. 훈련 태도가 철저했고, 경기 전 루틴을 지키는 습관은 신입 선수들의 귀감이 됐다. 삼성과 kt에서도 그는 마찬가지였다. 감독 신임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더그아웃에서 팀 분위기를 조용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존재감은 기록 너머에 있었다.
현대 유니콘스 마지막 세대이자, 두산 왕조의 한 축으로 활약했던 오재일은 KBO리그의 변화를 몸소 겪은 세대다. 20대 초반에는 생존을 위해 경쟁했고, 30대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40대를 앞두고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스스로 물러났다. 그의 커리어는 화려한 천재형 스타의 전형은 아니었지만, 성실함으로 정상에 오른 선수라는 점에서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