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 죽기 전엔 바뀌지 않는다?…‘자문단’으로 막은 공장 비극
2025-10-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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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제지 중대재해 이후 민간 중심 안전점검 진행…“자문단 상설화 필요”
영국 ‘세이프티 리포트 시스템’처럼 구조적 점검체계 갖춰야 반복 막는다

[대전=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한 명이 숨진 뒤에야 움직이는 구조. 산업현장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한 민간 중심의 실험이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서 시도됐다. 지난 7월 발생한 중대재해를 계기로 꾸려진 ‘중대재해예방 안전자문단’이 약 두 달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구조적 개선 권고안을 내놨다.
이번 자문단은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의원(대전 대덕구)의 제안으로 출범했다. 자문단에는 안전공학 박사, 변호사, 노무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생산현장의 설비 점검부터 안전활동 모니터링, 산업안전교육, 합동토론회까지 전방위적 진단을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민간 참여형 점검이 국내 산업안전 체계에 긍정적 전환점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영국은 대형 사고 이후 ‘세이프티 리포트 시스템(SRS)’을 통해 현장 근로자와 시민이 안전위험 요소를 익명 제보하고, 독립기구가 이를 분석해 개선책을 권고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반면 한국은 법 제정 이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하거나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이 많아 실효성 논란이 이어진다. 특히 협력업체 노동자나 단기근로자에 대한 보호 장치는 여전히 허술하다는 지적이 크다.
박 의원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어떤 이유로도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며 “자문단의 제언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끝까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문단 구성에 힘을 보탠 한국노총대전지역본부와 외부 전문가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한솔제지 측도 “신탄진공장을 포함한 전 제조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현장에서의 중대재해는 반복될수록 시스템의 실패다. 전문가들은 일회성 대응이 아닌 ‘상설 자문단 제도화’, ‘안전 리포트 제도’, ‘독립 평가 기구’ 도입 등을 통해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가능한 산업안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