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전체가 썩어버린 건 처음”…수확 포기 속출, 초비상 걸린 ‘국민 식재료’
2025-10-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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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농가, 병해로 수확 절망
기후 위기의 무고한 희생, 브로콜리의 눈물
한국인의 대표 건강식재료 브로콜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전국 주요 산지에서 병해가 확산하면서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고온다습한 날씨와 잦은 비로 ‘검은무늬병’과 ‘검은썩음병’이 동시에 번지며, 브로콜리 밭이 통째로 썩어가는 심각한 피해가 현실화됐다.

20일 농민신문 보도에 따르면 충북 청주시 미원면 구방리에서 2700평 규모로 브로콜리를 재배하는 최영회(67) 씨는 “30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밭 전체가 병에 걸린 건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9월 초부터 4~5일 간격으로 10차례 이상 약제를 살포했지만, 계속된 비로 효과가 없었다. 결국 수확을 포기한 채 밭을 전부 갈아엎어야 했다.
같은 마을의 최장회 이장(70) 역시 4000평 규모의 브로콜리밭을 모두 버렸다. 그는 “수확할 것은 하나도 없다. 3주 넘게 비가 그치지 않아 브로콜리가 계속 물을 머금었고, 병을 피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농약값, 인건비, 종자대 등만 남은 상황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피해는 충북을 넘어 제주 주산지로 확산됐다. 제주시 한림읍의 한 브로콜리밭은 잎이 누렇게 변하고 갈색 반점이 번지며 썩어가는 상태다. 곰팡이성 ‘검은무늬병’과 세균성 ‘검은썩음병’이 함께 번진 탓이다. 연합뉴스TV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같은 피해를 입은 농민 선윤규 씨는 “올해도 수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브로콜리는 제주에서만 전국 생산량의 약 70%가 재배되는 대표 채소다. 따라서 병해가 장기화될 경우 공급 차질은 물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농업기술원은 “방제 시기를 놓치면 병이 급속히 번지기 때문에 초기 환기 관리와 배수 유지가 필수”라며 “비 오는 시기에는 약제 살포 타이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브로콜리는 한때 스테이크 곁들이나 다이어트 식단의 단골 채소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도시락 반찬·된장찌개·샐러드 등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국민 건강 채소’로 불린다. 비타민C와 식이섬유,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면역력 강화, 노화 방지, 체중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병해 확산으로 브로콜리 주산지가 잇따라 타격을 입으면서, ‘국민 식재료’ 공급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기후 불안정이 일상화된 가운데, 한때 ‘건강의 상징’으로 불리던 녹색 채소가 기후 위기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