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 조사하던 박정훈 대령, 10월에 별 단다”
2025-10-2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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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명령, 군 수사 체계 바꾸나
순직 해병 사건 수사를 이끌었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국방부 조사본부의 차장 직무대리로 임명될 예정이다.
20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한 지 석 달 만의 보직 이동으로, 박 대령은 내달 장성 진급 인사에서 준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 국방부 조사본부 차장으로 보직 이동
20일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는 21일 자로 박정훈 대령을 조사본부 차장 직무대리로 임명할 예정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 직할의 최고 수사기관으로, 군 내 중대한 범죄나 비위 사건을 직접 다루는 핵심 부서다. 현재 조사본부장은 12·3 비상계엄 관련 혐의로 기소된 박헌수 전 본부장이 휴직 중이라 공석 상태이며, 김상용 차장(대령) 역시 같은 사건으로 직무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조사본부의 운영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었고, 이번 인사는 조직의 안정화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현재 육군 군사경찰실장이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으며, 박 대령은 그 아래에서 차장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박 대령이 조사본부의 실질적 운영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 해병대 수사단장 복귀 후 석 달 만의 중책
박정훈 대령은 지난 7월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했다. 이는 2023년 8월 해임된 지 약 2년 만의 일로, 군 내에서는 ‘명예 회복’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복귀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군 수사기관의 핵심 자리로 이동하게 되면서, 그의 역할이 단순한 수사단장 수준을 넘어 군 수사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령은 지난해 순직 해병 사건을 수사하며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관련 자료를 경찰에 이첩했다. 이에 군 검찰은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박 대령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군 검찰의 항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특검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은 ‘군 지휘 체계와 법적 양심의 충돌’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양심의 명령을 따른 군인, ‘훈장 수여’로 평가받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박 대령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직접 수여했다. 이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불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헌법적 가치인 양심의 자유를 지킨 점을 인정한 조치였다. 국방부는 “박 대령이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군의 정당한 법 집행을 지키려 했다”며 그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평가했다.
이 훈장 수여는 군 내부에서 큰 상징성을 가졌다. 과거 상명하복이 절대적이던 군 문화 속에서, ‘양심의 명령’을 우선한 사례가 국가 차원에서 공로로 인정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박 대령이 군 수사 시스템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적임자로 평가받게 됐다.

◆ 준장 진급 유력… 조사본부장 승진 가능성도
군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를 박 대령의 조사본부장 승진을 위한 ‘전초 단계’로 보고 있다. 조사본부장 자리는 통상 준장급 장성이 맡는 자리로, 박 대령이 내달 예정된 장성 인사에서 1성(준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군 내부에서는 “박 대령이 향후 조사본부장으로 공식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흐름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군 수사 독립성 강화’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정치적 외풍이나 상명하복식 수사 관행을 줄이고, 법적 절차와 원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군 수사 시스템을 개편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박 대령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 적임자로 지목된 셈이다.
◆ ‘순직 해병 사건’ 이후 달라진 군 수사 환경
박 대령이 맡았던 순직 해병 사건은 단순한 사고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군의 지휘 체계, 책임 소재, 수사 독립성 등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 계기가 됐다. 해당 사건은 국민 여론의 관심 속에 군 수사 절차의 투명성과 독립성 확보의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이후 군 수사 제도 개편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중심에 있던 박정훈 대령이 이제 국방부 조사본부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됐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군 수사 시스템이 과거의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신뢰 회복의 과제 남아
다만 군 내부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박 대령의 복귀와 승진이 정치적 의미로만 소비되어선 안 된다”며 “군 수사기관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박 대령이 직무대리로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향후 군 사법 시스템의 신뢰 회복 여부가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양심으로 상징된 한 사건이, 이제는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