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인천서 처음 발견된 건데…별명이 '시계'인 멸종위기 생명체, 드디어 복원
2025-10-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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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복원의 상징, 다시 피어난 '시간의 꽃'
분홍빛을 띤 보라색 꽃이 오후 3시에 피었다가 밤 10시에 스스로 오므라드는 식물이 있다. 마치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작동하는 시계처럼 일정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꽃시계'라는 별명이 붙은 이 식물의 이름은 '대청부채'다. 1983년 인천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 희귀식물이, 40여 년 만에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다시 꽃을 피우게 됐다.

21일 국립공원공단은 태안해안국립공원 내 무인도 지역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대청부채의 복원사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복원은 2019년부터 6년간 이어온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공단은 2019년에 인공 증식을 통해 확보한 100개체를 현지에 식재했으며, 올해 10월에는 같은 지역에 100개체를 추가로 심었다. 이번 복원을 통해 태안 지역의 대청부채 개체군은 총 200개체 규모로 확장됐다.
해당 복원 사업은 단순한 식재가 아니라 자연 회복력 검증에 초점을 맞췄다. 무인도에 조성된 서식지는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채 자생 가능한 조건을 실험하기 위한 공간이다. 대청부채는 해안선이 완만하고 바람이 세지 않은 지역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태안의 해안 환경이 적합하다. 국립공원공단은 자연 서식지에서 안정적으로 번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오후 3시에 피는 '꽃시계'의 생물학적 비밀
대청부채는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평균 40~60cm 정도의 높이로 자란다.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정시 개화’다. 8월부터 9월 사이 분홍빛을 띤 보라색 꽃이 피는데, 매일 오후 3시쯤 활짝 열렸다가 밤 10시쯤이면 스스로 꽃잎을 오므린다.

이처럼 일정한 주기로 개폐를 반복하는 이유는 수분 효율성 때문이다. 국립생태원 연구에 따르면 대청부채의 개화 시간대는 꿀벌·나비 등 주요 수분 매개 곤충의 활동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햇빛이 강하고 곤충 활동이 활발한 오후 시간에만 꽃을 열어,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효율적인 수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시간에 꽃을 열고 닫는 습성은 다른 붓꽃류와의 교잡을 방지하기 위한 진화적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 특성 덕분에 예전에는 사람들도 대청부채를 ‘자연의 시계’로 삼았다. 해안 지역에서는 '대청부채가 피면 오후 세 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생물학적 신호로 인식됐다.
이름의 유래와 발견의 역사
대청부채라는 이름은 1983년 인천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식물 분류학자들이 대청도의 모래언덕에서 군락을 발견하면서 대청부채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채처럼 넓게 퍼진 잎과 붓꽃을 닮은 꽃 형태가 결합된 명칭이다. 학계에서는 얼이범부채, 참부채붓꽃, 부채붓꽃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공식 표준명은 대청부채로 정리됐다.

발견 당시만 해도 대청부채는 국내 자생종 중에서도 분포가 매우 제한적인 희귀식물이었다. 이후 백령도와 태안 일부 해안에서도 소규모 개체군이 확인됐지만, 무분별한 남획과 가축 방목, 해안 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결국 2005년 환경부는 대청부채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했고, 국가적색목록에서는 위기(EN) 단계로 분류했다.
한반도에서만 사는 꽃은 아니다…중국·몽골·러시아까지 퍼진 희귀종
대청부채는 한반도 고유종은 아니지만, 매우 제한된 북방계 식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지역 일부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 몽골 초원 지대 등에서 산발적으로 분포한다. 다만 이들 지역에서도 서식지가 제한적이며, 기후 변화와 개발 압력으로 개체군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대청부채는 특히 남방 한계선에 해당하는 개체로, 생태적 적응력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지표종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대청부채는 유전자 다양성이 높고,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이러한 특성은 향후 북방계 식물 복원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