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흔한데... 알고 보니 지구상 모든 과일 중 당도 1위라는 과일

2025-10-2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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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을 살아남은 역사적인 과일의 정체

대추 수확 모습 / 밀양식 제공
대추 수확 모습 / 밀양식 제공

여름 기온 40도의 중국 신장 지역에서도 자라고, 겨울 영하 20도의 한반도 북부에서도 버티는 과일이 있다. 냉장고 없던 조선 시대, 긴 겨울을 견디게 해준 천연 보존 식품. 3000년을 살아남은 과일 대추의 놀라운 생존 전략이 관심을 끈다.

대추 / 청양군 제공
대추 / 청양군 제공

‘2025 보은대추축제’가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충북 보은읍 뱃들공원 및 속리산 일원에서 열렸다. 이와 관련해 '3천 년을 살아남은 과일, 대추의 반전 생존 전략'이란 제목의 영상이 '귀농의신' 유튜브 채널에 최근 올라왔다.

대추는 조선 시대 가장 믿음직한 저장 식품이었다. 냉장고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가을에 거둔 곡식과 과일을 말려두고 그것으로 긴 겨울을 견뎠다. 대추는 햇볕에 말리기만 해도 쉽게 썩지 않고 작은 양으로도 높은 에너지를 냈다. 대추 껍질에는 사포닌과 폴리페놀 같은 성분이 있어서 미생물 증식을 억제해 부패를 늦춰주고, 과육은 수분 함량이 낮고 당도가 높아서 세균이 쉽게 자라지 못하게 한다.

현재 우리가 먹는 통통한 대추는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옛날에 재배되던 대추는 훨씬 작고 떫었다. 재래종 대추 또는 약대추라고 부른 대추다. 크기는 엄지손가락 마디만 했고 씨는 크고 과육은 적었으며 껍질은 질기고 떫은맛이 강했다. 그래서 과일처럼 생으로 먹기보다는 말려서 겨울철 저장 식량으로 쓰거나 한약재로 사용되던 작물이었다.

작다고 영양까지 부족한 건 아니었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실린 비교 연구에 따르면 재래종 대추는 현재 대중적으로 재배되는 복조 대추보다 오히려 당도와 주요 영양 성분이 더 높게 나타났다.

대추 수확 모습 / 연합뉴스
대추 수확 모습 / 연합뉴스

잘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대추의 당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다.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하다. 사과의 평균 당도는 약 15브릭스, 포도는 18브릭스 정도다. 대추는 30브릭스를 가볍게 넘긴다. 우리나라 대추 주산지 충북 보은에서는 40브릭스까지 측정된 사례도 다수 나오고 있다.

대추가 이렇게 높은 당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대추의 고향인 중국 북서부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보면 알 수 있다.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극한의 환경에서 대추는 물을 저장하는 대신 당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대추는 수분이 부족하면 스스로 탄수화물을 당으로 전환해서 에너지를 비축하는데, 그래서 수분이 줄수록 오히려 당도가 올라가는 독특한 과일이다.

또 대추는 한꺼번에 익지 않는 시간차 과일이다. 같은 나무에서도 가지마다 익는 속도가 달라서 위쪽 열매가 먼저 붉어지고 아래쪽은 며칠 뒤에 익는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한 번에 수확하지 않고 3회에서 5회에 걸쳐 여러 번 딴다. 수확 과정은 번거롭지만 오히려 장점도 있다. 대추는 완전히 익는 순간 당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가장 달았을 때 골라 수확할 수 있는 과일이다.

대추는 건조되면서 당도가 크게 올라간다. 물이 빠져 당이 농축될 뿐만 아니라 건조 과정에서 대추는 호흡을 계속하며 신맛을 내는 유기산을 먼저 소비하고 당농도 상승효과가 일어난다. 그래서 완전 건조 대추는 45에서 70브릭스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지나치게 달아서 먹기 힘들다는 건조 대추야자(일반적으로 60브릭스)에 육박한다.

대추나무는 비옥한 밭보다 배수가 잘되는 황토 자갈 섞인 땅에서 더 건강하게 자란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비옥한 토양에서는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오히려 약해질 수 있지만, 건조한 산비탈이나 척박한 토양에서는 깊은 뿌리를 내려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대추의 강인함의 비밀은 생존 전략에 있다. 대추는 뿌리를 깊게 내려 스스로 물을 찾아가는 식물이다. 잎은 작고 두꺼워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밤이 되면 잎의 기공을 거의 닫아 호흡을 최소화하고 수분 증발을 줄이는데, 이 능력 덕분에 수분이 부족한 날씨에서도 살아남는다. 가뭄이 와도 비가 거의 없어도 버티다가 겨울이 오면 스스로 휴면 상태에 들어가 나무 조직을 보호해 혹한을 넘긴다.

또 하나 대부분의 과일나무는 벌이나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열매를 맺지만 대추는 스스로 열매 맺는 힘이 강한 나무다. 대추꽃은 곤충에 의해 수분되지만 자가 꽃가루만으로도 수정이 가능한 자가결실성 작물이라 벌이 적은 산간 지역이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옛말에 "논밭은 버려도 대추나무는 남는다"는 표현이 있다.

대추는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 전해졌지만 체계적인 재배 문화가 자리잡은 곳은 보은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미 보은의 대추가 으뜸이라고 기록돼 있고, 허균의 지봉유설에서도 거창의 밤, 미원의 밤과 함께 조선의 3대 특산물로 보은 대추를 꼽았다. 대추는 보은이라는 공식은 500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보은은 대추 재배 천혜 환경을 갖췄다. 보은의 내륙 분지형은 대추에 큰 일교차를 만들어 대추의 당도를 높였다. 또한 보은의 황토와 자갈 토양은 뿌리를 깊게 뻗게 했다. 또 보은 지역에 산을 타고 흐르는 바람길은 자연 건조의 최적 환경을 만들었다.

환경만 좋은 게 아니다. 보은은 전국 최초로 대추 공동 선별 시스템을 도입했고, 심지어 대추 전문 교육 기관 보은대추대학을 만들었다. 현재 약 1400여 농가가 대추를 키우고 있는데 대한민국 최대 규모다. 그리고 보은에서 한국 대추 품종의 판도를 바꾼 품종도 탄생했다. 당도 30에서 34브릭스, 일반 대추 대비 3배에서 5배 크기인 천상대추는 보은에서 탄생했다.

동의보감에는 "대추는 위장을 편하게 하고 기운을 더하면서 오장의 혈을 보호한다"고 나온다. 대추는 당시 인삼, 생강, 감초와 함께 한약 기본 4대 약재 중 하나로 꼽혔고 지금도 한약 처방의 상당수에 포함된다. 강한 약재와 함께 끓일 때도 위장을 보호해 부작용을 줄여주고 다른 약재들이 몸에서 잘 작용하도록 도와주는 조화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대추를 이야기하면 흔히 "대추는 성경에도 나온 과일"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대추는 우리가 아는 그 대추가 아니다. 성경 원문에는 히브리어 타마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대추야자나무를 뜻한다. 성경 속 대추는 실제로는 대추야자 열매, 즉 오늘날 우리가 데이트라고 부르는 과일이다. 반면 우리가 먹는 대추는 대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다. 식물 분류부터 다르다. 대추야자는 야자나무과,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다. 이름만 비슷할 뿐 식물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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