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만 뽑으면 된다' 유튜브 쇼츠에 혈안 된 국회의원들

2025-10-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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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콘텐츠 제작 현장' 된 국정감사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질의하며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스1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질의하며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스1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정책 점검보다 '쇼츠용 장면' 중심으로 소비되며 본래 기능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들의 질의는 정책 검증보다 자극적인 장면을 노린 연출로 변했고, 국정감사는 이제 ‘정치 콘텐츠 제작 현장’이 됐다. ‘정쟁의 무대’이자 ‘조회수의 전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올해 국정감사는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주요 상임위원회마다 발언 시간 배분과 질의 순서를 두고 여야가 충돌했고, 회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회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에서는 국민의힘이 “위원장 독주”라고 반발했고, 민주당은 “야당의 지연 작전”이라며 맞섰다.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고, 정회와 고성이 일상처럼 반복됐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얼굴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진에 합성한 ‘조요토미 희대요시’ 이미지를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에서 꺼내 들었다. 논리보다 연출이 앞선 장면이었다. 현장에서는 “정책 검증이 아니라 조롱”이라는 비판이 나왔음에도 이 장면은 곧바로 편집돼 유튜브 쇼츠로 퍼졌다. 영상은 각종 정치 채널과 언론사 계정을 타고 빠르게 확산했다.

이날을 전후로 구글 트렌드에서 ‘조희대’ 검색어 관심도는 최고치인 100을 기록했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관심도가 0에 가까웠던 이름이 합성사진 한 장으로 하루 만에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실제 사법 행정이나 정책 발언보다 ‘이미지 한 컷’이 큰 파급력을 가진 셈이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시청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시청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국감이 중반으로 접어든 23일에도 또다시 유사 장면이 반복됐다. 서울시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오세훈 서울시장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증언대에 섰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쇼츠 형태로 편집돼 수십 개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증언의 사실관계보다 발언 직후 표정이나 말투가 ‘화제성 포인트’로 소비됐다.

이처럼 국감장에서 나온 말과 장면이 실시간으로 유튜브 콘텐츠로 재가공되는 일이 잇따르자 의원들의 질의 태도도 달라졌다. 카메라를 의식한 질문과 컷 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연출이 늘어났다. 보좌진들 사이에선 “이번 장면은 써먹을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간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선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욕설 논란이 벌어졌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고성을 주고받았고, 회의는 수차례 중단됐다. 증인과 참고인들은 회의장 밖에서 4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그날 회의장은 ‘정치 리얼리티 쇼’에 가까웠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문자메시지. / 국회방송 유튜브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문자메시지. / 국회방송 유튜브

여야는 이처럼 정쟁에 몰두하면서 주요 현안을 방치하고 있다. 부동산 민심 악화,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 공공기관 화재 등 실질적 정책 대응이 필요한 이슈들이 줄줄이 뒤로 밀렸다. 상임위별로 책임 공방만 이어지고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노리는 의원들이 상임위별로 포진한 까닭에 정책보다 노출 효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뚜렷하단 지적이 나온다.

국정감사는 본래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예산과 정책을 감시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다. 하지만 올해는 그 본질이 거의 사라졌다.

과거 ‘국감 스타’들은 논리와 준비로 주목받았다. 1988년 13대 국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의로 이름을 알렸다. 그 시절의 스타는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진실을 끌어내는 정치인’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조회수만 높이면 어떤 방식이든 허용되는 분위기다. ‘문제 인물’이 ‘화제 인물’로 둔갑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국감의 본질은 멀어진다. 쇼츠 시대의 정치가 만들어낸 왜곡된 풍경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피감기관 관계자들의 반응마저 냉담하다. 의원들이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질문하는지, 정책을 점검하려고 질의하는지 망신을 주려고 질의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는 말이 이들 입에서 나온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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